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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25. 2021

폭염 속에서도 달리기를 할 수 있는 힘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퇴근 후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아도 기온이 떨어질 생각이 없어 두려움에 떨면서 달리기를 하러 나서야 했다. 이러다 쓰러지는 건 아닌지, 페이스는 제대로 나올지 고민하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나가보면 알 거야. 힘들면 달리다가 도중에 와." 맞는 말이었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오래 고민한다고 더 좋은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뉴스레터에도 마침 이와 비슷한 문장이 담겨왔다. 그냥 시작하라고. 딱 한 세트만 먼저 해보고, 기분이 어떤지 살펴보라고. 그는 매번 운동하기 싫을 때 딱 한 세트만 해보자고 마음을 먹는데, 십중팔구 운동을 끝까지 하게 되다고 했다.




체력도 좋아지고, 달리기 실력도 점차 향상되는 걸 느끼는 것도 있고, 공원에서 함께 뛰고 걷는 사람들과 강아지들에게 묘한 애정을 느끼게 된 것도 있지만, 이렇게 더운데도 계속 나가서 뛰게 되는 건 그것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달리기에 중독되었다고? 물론 맞지만, 달리기가 내 정신건강에 얼마나 이로운지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든 하루에도, 가마솥에 들어온 듯 후끈하 공기가 날 달궈도, 숨이 턱까지 차고 다리는 아파서 더 못 뛸 것 같아도, 나는 내가 완주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동안 꾸준히 달려왔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쌓였기 때문이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4월, 실내운동도 어렵게 된 시점에서 아무리 혼자 열심히 홈트를 해도 정적인 운동만 계속하다보니 체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많아진 시간을 활용해서 체중도 줄이고 새로운 취미를 만들고 싶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겹쳐 주체할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달리기 후에 숨이 가쁜 상태가 계속 되는 것, 그 보람차고도 고양된 기분이 너무 좋아서 계속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책, <진리의 발견>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내가 나의 초라함 때문에, 아니면 실은 사랑스럽지만 얽히고 섥히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 받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도망치고 싶을 때도 내 일상에 달리기가 녹아있어, 나는 지난 몇 달간 비교적 잘 견뎌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10년이 지난 후 남편을 잃은 여동생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에서 디킨스는 슬픔이 완전히 가시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계속 살아가려면 “잃어버린 영혼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면 실제적이고 성실하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쓴다. “생각을 안정시키고, 하루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고,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그런 일을 만들고, 무엇에라도 몰두해야 한다. 이런 식의 기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정신의 노력을 도와야 한다.” 이런 전략은 진부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상실을 겪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전략 안에서 생존이라는 필수적인 진부함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 <진리의 발견>, 마리아 포포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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