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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27. 2021

<앨리스 달튼 브라운 : 빛이 머무는 자리>전시 후기


여름 휴가도 물 건너간 이 시기에, 마음을 뻥 뚫어줄 무언가가 간절했다. 내면의 풍경을 환기시켜주고, 평일에 다시 경주마처럼 달릴 수 있는 힘을 내기 위해서. 아닌 게 아니라, 온종일 내 뇌에 누가 새겨놓은 듯 머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도 떨쳐낼 필요가 있었고, 직장에 사서 고민할 거리들이 꽤 많아져서 정신이 혼잡스럽던 참이었다.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직장,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내게 상기시킬 필요가 있었다. 딱 4박 5일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면 다 풀릴 것 같은데, 여의치 않으니 그림을 보러 전시회로 향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해 본 전시회 중 가장 좋았다. 그림자와 해가 비친 물결, 햇볕에 반짝이고 어두워진 잎사귀들을 얼마나 세밀하게 잘 표현했는지, 마치 햇빛이 그의 그림 속에서 뛰어노는 것 같았다. 마음으로 시원한 물을 들이켠 것처럼 깨끗해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찾던 그림들이 딱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작가가 얼마나 오랫동안 관찰하고 실험하며 작품을 완성해갔을지 짐작해보았다. 그의 성실함과 끈기가 존경스러웠다.





언제부터인가 완성작만큼이나 습작 보는 것을 즐겨한다. 작가들의 작업 방식과, 그 과정에서 했을 고민, 어떻게 완성작으로 점차 나아갔을지 상상하고 나를 대입해보는 재미가 있다. 신기하게도, 앨리스 달트 브라운의 습작을 볼 때는 완성작을 볼 때만큼의 전율이 없었다. 하염없이 들여다봐도 질리지가 않고, 작품에 다가섰다가 멀어졌다가 하며 빛이 어떻게 그의 작품에서 마술을 부리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그의 습작에는 없었다. 물론 작품의 구조 등을 연습하기 위해 그린 습작이라 세부적인 디테일이 빠진 탓도 있겠지만, 흔히 말하는 천재성이라는 것이 연습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고, 어쩌면 또 그래야만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와 숲에서 자라온 나는, 내 눈이 이걸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의 고향, 곧 자연이 있는 곳을 내 눈과 마음은 늘 찾아헤맸었나보다. 너무 익숙해서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내가 말하지만, 자연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사진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또 무신경한 인간의 눈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뛰어나게 담아낸 작품들을 원없이 볼 수 있어 행복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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