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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31. 2021

우울한 내 하루를 밝혀주는 것


어제는 끔찍하게 우울한 하루였다. 이렇게 끝도 없이 동굴로 파고드는 우울을 앓는 건 오랜만이었기에 생경했다. 코로나19로 뜻하지 않게 민원 업무를 시작한지 벌써 2년차인데, 안내하려고 다가갔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고, 거래처 사람은 늘 그렇듯 비협조적으로 떽떽거리고, 내 일도 아닌데 나에게 일을 맡기려고 슬금슬금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에 미리부터 스트레스만 엄청 받고, 잘못 보낸 이메일을 발견하고, 보고 싶던 사람은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집에 들어와 밥을 먹다가 문득, 내가 먹고 있는 닭조림이 상했으며, 그것도 며칠 전부터 상한 냄새가 심하게 났는데 나는 의식으로 알아차리지는 못한 채 계속 먹어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생이 이렇게 엉망진창인 하루도 있는 것이다. 운동도 하기 싫고, 기력이 하나도 없는데 얼마전 읽은 뉴스레터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안 좋은 날 하는 행동이 습관이 된다는 것. 그래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공원으로 가서 저녁 하늘을 보며 운동을 하는데 기분이 점차 풀렸다. 집에 들어와서는 온종일 있었던 슬픈 일들, 그리고 왜 이런 나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는지, 내 마음이 얼마나 추하고 어디에 내놓기가 부끄러운지 가족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반드시 내일, 그러니까 이제 오늘이 된 토요일에 맛있는 걸―내가 좋아하는 케이크와 늘 먹고 싶었던 치킨― 먹으며 풀자고 약속을 했고, 내가 너무 잘하려고 해서 그렇다고, 나라서 이만큼 참는 거라고 위로를 받았다.





오늘은 나를 달래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작정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 특히 실내는 피하면서도 내 하루를 밝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예술, 혼자만의 시간, 가족과의 대화, 그리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이다. 이제 나는 어른이니까, 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잘 조절할 수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므로. 다음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필요한 힘을 비축해놓으려 한다. 불필요한 것은 너무 많은 생각이다. 나만의 동굴로 깊이 파고들어가기 전에 행동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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