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은 Aug 01. 2021

모란의 꽃잎에 폭 안겨서 위로를 받았어

<안녕, 모란> 전시 후기


모란이 그려진 부채를 준다기에 혹해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안녕, 모란> 전시회를 다녀왔다. 경복궁역 5번 출구에서 내렸고, 둘러보는데 총 4~5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모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올 때는 모란도, 모란을 애정하는 사람들도, 모란전을 기획한 국립고궁박물관도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안녕, 모란> 전은 조선 왕실에서 모란이 어떻게 쓰였는지 볼 수 있는 특별 전시다. 모란무늬는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혼례복, 신부의 얼굴을 가리는 부채, 청자, 가마 등 다양하게 그려졌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흉례에 쓰이는 모란이었다. 흉례에 쓰이는 물품을 나르는 가마에는 모란 장식이 있는 가마를 쓰는 것이 법도였다고 하며, 장례를 치를 때도 각 절차에 모란도 병풍을 두었다고 한다.




나의 즐거운 나날들에도 함께하듯 깊이 내 안으로 침잠하는 하루에도 빼놓지 않는 그런 의식이 내게 있던가, 생각해보았다. 모란도 병풍처럼, 무너진 마음이 아예 쓰러지지 않도록 떠받치는 무언가가.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싫어했던 절차, 예식, 법도들이 나이가 들면서 이해되고 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났다. 





친절은 힘든 것이다. 친절에는 감정 이입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유교 의례가 필요하다.


결혼과 졸업, 죽음처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리가 의식을 치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너무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켜서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의례는 우리를 하나로 모아준다. 의례는 우리의 감정을 담을 그릇을 제공한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저





내게 모란도 병풍은 매일 하는 글쓰기, 샤워, 그리고 격일마다 하는 달리기. 어떤 감정이 나를 밀어올렸다가 끌어올리든, 아무리 큰 사건이 나를 사로잡고 마구 뒤흔들든, 나의 일상을 견고하게 지킬 수 있는 병풍이 늘어갈수록 나는 단단해진다. 뿌리가 깊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한 내 하루를 밝혀주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