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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7. 2020

다른 사람의 독서목록이 궁금하다면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서효인 + 박혜진 저

0. 책을 읽게 된 계기

이렇게 공감가는 제목이 있을까? 꼭 <읽어본다> 시리즈가 아니었더라도 지나치치 못하고 집어들었을 책이다. 게다가 표지도 그간 시리즈와 달라져서 다소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서점에서 집어들고 조금 읽어보다가, 이 책은 이렇게 서서 조금씩 읽을 책이 아니라, 통째로 집어들고 샅샅이 읽어야 되는 책이라고 생각되어 내려놓았다. 도서관에 비치희망을 넣고, 한참을 기다리다가 업어온 책. 

1. 감상문

1) 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 중 두번째로 좋았다. 첫번째는 단연 <내 아침인사 대신 읽어보오>. 그 책은 한 문장, 한 꼭지, 나아가 책 전체가 한 편의 예술이었다면, 이 책을 통해서는 편집자들 특유의 잘 정리되고 정제된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딱히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는 책.

무엇보다 이 책의 개성이란 두 가지가 있는데, ㄱ. 지금까지의 <읽어본다>시리즈와는 달리, 동료 편집자끼리 쓴 책이라는 것. 직장 동료간의 우정/사랑/전우애를 뜻깊게 생각하는 나로서 그들의 서로 믿고 존중하는 태도를 동경하게 되고, 또 얼마간은 부럽게 생각되었다. 참, 편집자들끼리 쓴 책이라 비문이나 맞춤법 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매우 좋았음. '잘살고'와 '잘 살고'의 차이를 아는 사람의 문장은 역시. ㄴ. 서효인 편집자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첫째는 다운증후군이다. 얼마전,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냐>라는 그래픽 노블을 읽기도 했지만, 그 마음이 어떨지 나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저 그가 쓴 문장들을 곧이곧대로 믿고, 또 가만히 따라가볼뿐이다. 엄마와도 이 책에 대하여(부모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를 길게 나누었다. 

2) 책을 통해서 박혜진 편집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절제된 문장과 감성이 좋다. 그는 편집자일뿐 아니라 평론가이기도 하고, 산문도 쓴다고 한다. 에필로그까지 더없이 좋았던 그의 글의 특징은 진솔함과 부드러움이다. 나도 글을 통해서 글 쓴 사람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촌스러운 사람으로서, 분명 그는 주변까지 훈훈한 온기를 나누어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3) 누군가 읽을 책의 목록을 어디서 구하냐고 물어본 적 있다. 가장 좋은 건 서점에서 눈에 띄는 양서를 낚아채기. 그 다음은 다른 독자들의 독서 목록을 참고하는 것. 그리고 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는 이러한 참고하기에 참 좋다. 책을 읽으며 읽고 싶은 책들을 따로 기록도 하고,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관심도서목록에 추가하며 읽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좀더 풍요롭고 즐거운 독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읽는 과정이었다. 공감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기도 하며 마치 함께 감상을(그리고 마음을) 나누는듯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던 기분 좋은 독서.

4) 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의 장점 : 마음가는대로 펼쳐서 어디서부터나 읽을 수 있음. 시끄러운 장소(지하철, 운동장 등) 어디에서도 집중하는 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음. 나름 희귀한 양서를 알 수 있음.

5) 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의 단점 : 편집자들이 몹시 부러워진 나머지 생업을 그만두고 출판업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킴.

2. 인상깊은 구절

1) "번역은 사랑의 수고이다"

2) 고통의 언어를 공유하면 고통의 실체를 객관화할 수 있다. 그리고 파악된 고통은 정체불명의 고통보다 훨씬 덜 괴롭다.

3) 오늘을 잘살고 올해를 잘 보내는 와중에도 10년 뒤를 위한 일을 계획해야 한다. 노력과 애정은 배반하지 않는다. 이 책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4)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적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동시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5) 백만 번을 죽고 백만 번을 살아난 고양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두 번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는 이야기. 사랑을 했으므로 더이상 살아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더없이 사랑스럽다가 더없이 슬프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를 찾는 일. 인간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의 수만큼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존재를 찾아서 비틀비틀 걸어가는 게 인간의 삶이 아닐까 한다.

6)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물질이 된다. 완전히 새로운 그 물질은 하나가 되기 전엔 있을 수도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독서감상문 #책추천 #난다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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