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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03. 2021

새로운 경험들로 덧입히는 일

선선한 여름밤의 달리기는 즐거워


어제는 이번주 중 가장 시원한 날이었다. 비가 살짝 내려서 조금 습하면서도 선선한 기운에, 이런 여름밤은 반드시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을이 되면 달리기가 얼마나 더 즐거울까 생각하는데, 이제야 8월 초이지만 여름도 지고 있는지 8시만 되어도 꽤 어두웠다. 가로등이야 밝지만 꽤 어두워진 공원을 달리는 게 어쩐지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몸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고, 원래 달리던 거리에 훨씬 못 미쳐서 아쉬웠다. 처음 시작은 늘, 그래, 한 바퀴만 달려보고 아니면 가볍게 운동하다가 들어가자 싶지만 한 바퀴를 뛰고 나면 끝까지 다 달리게 된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기력이 없어도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걸 아는 건, 도무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때 내가 계속 뛰어왔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즐겨듣는 라디오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 금요일 편에는 양재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나와 <깨끗하고 어두운 방>이라는 코너를 한다. 고민 편지를 받고 상담을 해주는 코너인데, 여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관계로 상처받아서 새롭게 시작하는 걸 두려워하는 청자에게, 계속해서 다른, 더 좋은 관계로 경험을 새로 입히는 수밖에는 없다고. 그런 성공의 경험들이 꼭 필요하다고.




성공의 경험을 쌓기 위해 첫 발을 내딛는 과정은 녹록치 않을 것이다. 관계든, 나와의 싸움이든, 특히나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미리 알고 있다면. 그러니까 우리는 때론 앞을 미리 내다볼 필요가 없다. 나는 실패할 수 있고, 그래도 괜찮다는 어린 여우의 마음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미리 헤아리고 재고 내다보는 늙은 여우의 마음이 아니라.




요즘 위로를 받고 있는 드라마 <너는 나의 봄>에서 말했듯, 예전과 똑같은 관계, 똑같은 경험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서로 상처를 주고 관계는 파탄이 난 내 반쪽 같았던 단짝 친구, 어른이 되면 같은 집에서 살고 싶었는데, 그런 친구는 이제 두번 다시 없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날 사랑하겠다고 말했다가 1년이 되지도 않아서 더럽게 끝을 맺은 그런 남자도, 그렇게 설레고 서툴고 엉망진창인 관계도 두번은 없겠지. 그러나, 내가 나를 알고, 나의 무게중심을 잡은 채로 천천히 쌓아올리는 나의 새로운 경험, 관계들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고, 그래서 오늘도 무섭지만 조금 더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오늘은 처음 맞이하는 새로운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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