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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07. 2021

<피닉스>, 내 안에 오래 남아 숨 쉴 영화


영화 <운디네>를 인상깊게 본 후, 여운이 길게 남았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영화에 대한 이해가 더 커졌다. 꼭, 내 안에서 그 영화가 계속 상영되면서 점차 깊어지고 나와의 관계 역시 내밀해지는 것처럼. 그래서 같은 감독의 영화 <피닉스>도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었는데, 관람한 사람들의 후기가 워낙 좋았다. 음악을 워낙에 잘 썼고 엔딩이 대단했으며, 여운이 길게 간다고 하기에 마침내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도대체 어떤 엔딩이 기다릴지 내내 기대했다.




결론은, 기대보다 더 좋았던 영화이다. 이쯤되니 이 감독의 또 다른 영화 <트랜짓>도 꼭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큰 스크린에서 보는 것이 좋을 장면들이 많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훨씬 좋을 영화이다. 그것도 어떤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보고나서 알아보고 싶은 정보를 찾아읽는 것을 추천한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넬리는 심한 부상으로 인한 재건수술 때문에 얼굴이 바뀐다. 그가 되찾고 싶은 것은 정확히 옛날과 똑같은 얼굴이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바뀐 것은 얼굴뿐이 아니다. 수용소 생활로 황폐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채로 넬리는 그 고된 시간을 버티는 동안 애타게 보고싶던 남편 조니를 찾아 나선다. 조니는 모습이 변한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었다고 생각한 아내와 꽤 닮은 넬리에게 아내가 받아야 할 상속금을 함께 받아 나누자고 제안한다. 넬리는 조니가 시키는 대로 과거의 넬리를 흉내내기 시작하는데, 넬리는 조니에게 자기 자신임을 언제 어떻게 밝힐지, 배 밑에 숨어지내던 넬리를 고발한 자는 누구인지―넬리의 친구가 의심한대로 그녀의 남편 조니인가―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감독 크리스티안 페졸트는 <피닉스>의 드라마를 '단 한번도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지 못하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피닉스에서 '눈빛'은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처음 온통 붕대로 휘감은 넬리를 '보겠다고' 고압적으로 명령하는 군인이나, 눈을 떼지 못하고 남편 조니를 쳐다보는 넬리, 그리고 그 애틋하고 간절한 눈빛이 영화 후반부에는 어떻게 바뀌는지, 그리고 넬리의 옛 빨간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한 넬리를 본 조니의 눈빛 등등.




넬리는 예전 넬리가 좋아하던 여배우를 따라하고 붉은 드레스를 걸치라는 조니에게 수용소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이 그런 모습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수용소 생활에 대해서 사람들이 물어볼 것이라고. 이에 조니는 대꾸한다. 사람들은 그런 모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피닉스>는 보고 싶은 것과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 보여지길 원하는 것, 보이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적으로 보고 싶어하고, 그에 반해 진실은 어디에 숨어있는지. 그리고 깊은 심연 속의 진실을 들여다본 이후에 우리는 여전히 예전의 자신일 수 있는지. 또한, 나의 편의를 위하여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넬리는 두 번의 큰 강을 건넜고,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하나는 수용소 생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가 품고 있던 사랑에 대한 진실이다. 그 중 하나의 심연에서 그의 친구는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고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견딜 수 없이 삶보다 죽음에 더 이끌리게 된 마음을 표현해낸 방식이 좋았다.




영화의 주제곡인 <Speak Low>, 밤거리에서 넬리가 멈춰선 채 귀 기울이던 바이올린 연주, 넬리가 음악가였던 남편을 찾아간 <Phoenix>에서 두 여인이 부르는 쾌활한 노래 등.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위해 음악으로 차곡차곡 지어간 집과 같다. 기차역에서 마침내 남편을 마주한 것처럼 연기한 넬리가 <Speak Low>를 부르면서 그의 왼쪽 팔에 새겨진 수감자 번호가 보이고 조니가 넬리가 바로 그 '넬리'임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 그리고 노래를 마친 넬리가 겉옷을 챙겨 밖으로 홀로 나가는 그 장면이 오래오래 내 마음에 남을 듯하다. 감독의 다음 영화가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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