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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09. 2021

<우리, 둘>, 사랑을 선명하게 그려낸 영화


보는 내내 마음이 벅차기도 아리기도 해서 조금 울었다. 사랑이 너무 선명하게 눈에 보여서, 그리고 그 사랑이 너무 아름다워서, 또 무엇 하나 쉽지 않은 게 갑갑해서. 나는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통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우리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그리고 받아들일만큼의 용기만 있다면, 사랑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




영화 <우리, 둘>은 니나와 마도의 사랑 이야기이다. 젊었을 적 로마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현재 이웃집에 살고 있고, 마도가 아이들에게 모두 말한 뒤 함께 로마로 이사할 계획이다. 마도는 남편과의 불화로 인해 오랜 상처가 있는 자녀들 앞에서 끝내 고백하지 못하고 아파트를 팔 계획도 취소하고 만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니나는 충격을 받고 화를 내는데, 하필이면 그 직후에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게 된다. 니나는 가족도 아닌 친구로서 마도의 병세를 지켜보고 곁에 있고 싶어서 이런 저런 수를 쓰게 되는데, 결국 간병인은 쫓겨나고 마도의 딸이 그들의 관계를 알아차리곤 마도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시킨다.




<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를 더 즐겁게, 만족스럽게 보았지만, 이건 연애가 꽃처럼 피고 지는 과정을 그려낸 영화라면 <우리, 둘>은 사랑을 그려낸 영화다. 니나와 마도는 사랑이 시간이 지난다고 바래지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차곡차곡 쌓아올린 추억과 같이 힘이 세진다는 걸 보여준다. 수십겹의 패스츄리처럼 더욱 견고하고 아름다워진 채로.




또한, 이 영화가 가족 간의 애증, 갈등을 선명하게 그려낸 만큼 나도 반성했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나이든 부모님의 삶의 내막을, 그리고 현재 무엇이 최선인지를 알고 마음대로 결정권을 휘두를 수 있는 양 행동하는 마도의 자식들을 보는 게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다 알아, 나의 엄마고 아빠니까. 내게 너무 큰 고통을 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런 생각을 갖고 다 받아줄 게 뻔히 보이는 넓은 가슴에 대고 응석을 부리는 것이다. 마음껏 못 박으면서. 나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해묵은 이야기를 굳이 말하면서 그들이 자기 삶을 온전히 살 수 없도록 방해하는 일, 나를 낳았기 때문에 내가 바라는 부모 역할을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듯 구는 일이 얼마나 잦은지.




세월은 우리를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다놓는다. 내가 누구와 함께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음껏 말하지도 못하게 될 때도 변치않는 사랑이 내 안에 숨 쉬고 있다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둘>은 사랑이란 모든 기력을 다한 채 누워만있던 환자도 일어나서 걷게 한다고, 또 밖에서는 쫓아온 딸이 문을 두드리며 소리지르고, 쫓겨난 간병인이 그의 아들과 온 아파트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뒤 마지막 보루였던 돈까지 훔쳐가도,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곳이 <La terra>가 흐르는 로마의 아파트라고 말해준다. 더이상 사랑을 말하지 못하더라도 눈만 마주쳐도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일 때는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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