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여름 저녁, 달리기는 즐거워
어제는 달리기를 하는 날이라고 하루종일 마음먹고 있었는데, 퇴근시간에 맞춰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웬 낭패람, 싶었지만 간혹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있어 맞을 만한 비라는 생각이 슬슬 들었다. 머리숯이 많은 편이 아닌데, 산성비는 아닐지, 환경오염 물질이 얼마나 이 빗속에 들어있을지 생각을 하다가, 낮에 <놓아버림>에서 내가 품은 부정적 신념 체계만이 내게 영향을 미친다는 구절을 읽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래, 나는 청춘영화에나 걸맞는 빗 속 달리기를 하고 있는 거야, 하고 주문을 외우기로 했다.
아마도 고등학교 다닐 시절,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비와 함께 춤추는 것'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런 삶을 살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이 말을 삶으로 구현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아서, 비가 더 많이 오면 어떡하나 싶어서 못 뛰거나 우산을 챙겨 나가 걷기보다는, 비가 내리면 좀 맞으면 어때, 나는 달릴 수 있을 만큼은 달리는 사람이고자 했다. 알 방법이 없는 미래를 겁내면서 움츠려들기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수 있는 만큼 신나게 해보기로.
얼마전, 달리기를 하다가 그때의 내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문득 깨달은 이후로 달리기를 할 때 이 느낌을 마음껏 만끽하려고 한다. 이제는 런데이를 틀지 않고 30분이 아닌 공원 세 바퀴를 뛰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어제는 비가 조금 내리다가 다행히 조금씩 잦아들었고, 나는 약간의 비 덕에 서늘하고 상쾌하게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기력이 없는 것 같아도 참 이상하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기운이 나서 목표했던 만큼 채우게 되니까. 어제도 세 바퀴째가 가장 수월했다. 오늘은 기력이 없어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최악의 하루를 보내서 달리지 못할 것 같다고 내 머릿속 생각이 속삭이지만, 그걸 믿을 필요는 없다.
달리기하면서 체력이 좋아진 걸 느낄 때는, 오르막길 달리기, 그리고 일상생활 속 계단 오르기가 이제 그렇게 힘들지 않을 때. 오르막길도 이제는 큰 부담 없이 슥슥, 오를 수 있게 되었고, 계단을 올라도 한참을 숨고르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오르막길 달리기는 처음부터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겁을 먹고 있었고, 그동안 쌓인 경험을 통해 오르막길도 달릴 만하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런지도. 무엇이 되었든, 좋은 일이다. 나의 1년 후, 3년후, 10년 후에도 달리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의 내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