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정성이 담긴 붕어빵의 맛
한 해의 마지막 날이건만, 붕어빵은 좀처럼 팔릴 생각을 안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붕어빵에 얼마나 나쁜 재료가 들어가는지, 붕어빵이 왜 먹으면 안 되는 간식이 되었는지 대대적으로 고발했기 때문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통통한 붕어빵은 죄가 없었고, 늘 깔끔하게 붕어빵 만드는 기계를 관리하던 소녀는 처음에는 억울했고, 이제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붕어빵이 팔리지 않는 대신 호떡 집은 불이 나고 있었기에 소녀는 호떡 장사를 할걸 조금 후회했다.
소녀가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건 무려 일곱살 때였다. 물론, 그때는 할머니를 보조하던 역할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할머가 돌아가신 이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소녀가 홀로 붕어빵 장사를 해야 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붕어빵 인기가 해가 갈수록 떨어지리란 걸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지만, 실은 소녀가 붕어빵을 워낙에 좋아했기 때문에 할머니가 붕어빵 장사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 거였다.
"아무도 안 팔리면, 다 우리 손녀 주지, 뭐!"
하지만 소녀는 이제 붕어빵이 지긋지긋했다. 따끈하게 갓 구워진 붕어빵을 기다리지 못하고 급하게 찾는 손님이 있을까봐 미리 구워놓는 붕어빵을 아무도 찾지 않으면, 그건 소녀의 저녁밥 혹은 다음날 아침밥이 되어야 했다. 게다가, 어떻게 해도 소녀는 할머니가 굽던 그 붕어빵 맛을 따라할 수가 없었다. 그건 그리움과 추억의 맛, 소녀를 향한 사랑과 정성의 맛이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이러다가 진짜 붕어가 될 것 같아, 할머니.'
이제는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지만, 아예 사람들은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거나, 얼른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일곱살쯤 되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 손을 잡아당기며 붕어빵 하나만 사달라고 졸랐으나, 엄마는 "집에 치킨 시켜놨잖아, 얼른 가서 먹자." 하며 아이를 잡아끌었다.
'나도 치킨 먹을 줄 아는데...'
소녀는 처음부터 닭장사를 시작했더라면 닭은 원없이 먹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소용 없는 생각이었다. 소녀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안쓰럽게 여기는 어른들이 있어 먹지도 않을 붕어빵을 소녀를 위해 사곤 했지만, 이제 소녀는 그렇게 귀엽고 동정심을 자아내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무럭무럭 자라난 소녀는 다른 소년소녀들보다 일찍 제 앞가림을 해야했다.
키가 유난히 작은 할머니가 쓸쓸한 생각에 잠긴 소녀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소녀는 뒤늦게 알아챘다.
"할머니, 붕어빵 드실래요?"
그러나 소녀는 묻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눈치가 빨랐던 소녀는, 자기에게 원하는 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해낼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붕어빵을 사려는 게 아니었다. 소녀는 만약 할머니가 돈이 없어서 붕어빵을 못 사는 거라면, 이미 구워놓은 붕어빵 세 개를 그냥 드릴 참이었다. 인적은 더욱 드물어져, 차라리 눈이 더 오기 전에 장사를 접고 얼른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할머니는 다른 용건이 있던 게 분명했다.
"아가, 딱 10분만 더 있다가 가."
할머니는 그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눈이 꽤 소복히 쌓였는데 할머니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자취를
감췄을까 궁금하던 소녀는 영문은 모르겠지만 10분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7분을 막 넘겼을 때, 모자를 눌러쓴 아저씨가 급하게 뛰어오더니 10만원어치 붕어빵을 주문했다. 미리 현금을 건넨 아저씨는,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맛있게 구워달라면서 씩 웃었다. 임신한 아내가 붕어빵을 너무 먹고 싶어했다며, 새해를 맞이해 모인 친척 어른들, 조카들, 무엇보다 아내에게 부족하지 않은 아주 많은 붕어빵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음날, 새해에도 어김없이 소녀는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오늘은 눈이 오지 않아서인지, 새해라서 추억의 음식을 먹고 싶어서인지 손님들이 꽤 있었다. 소녀는 열심히 붕어빵을 구워내면서도 내심 어제 봤던 그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제 봤던 그 아저씨의 친척인걸까? 우연히 10분 이내에 손님이 찾아올 거라는 걸 알게 된 건가?
소녀는 어쩐지 운명적이라고 느껴진 그 할머니와의 만남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할머니는 찾아오지 않았다. 혹시 너무 추워서 감기라도 걸리신 건지, 아니면 지나가는 우연에 불과해서 더는 만날 수 없는 건지 소녀는 궁금했다. 그러면서도, 분명히 또 만나게 될 것만 같은, 혹은 만나야 할 것만 같은 기묘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1월의 마지막 날, 소녀는 드디어 기다리던 할머니를 보았다. 장사를 막 접으려던 늦은 저녁이었다. 할머니는 가만히 웃는 얼굴로 소녀를 보더니, 붕어빵을 직접 구워 먹겠다고 말했다.
"할머니, 제가 구워드리면 안 될까요?"
나름 스스로 만든 붕어빵에 자부심이 있던 소녀는 할머니를 만류해보려 했지만, 할머니는 완고했다. 할머니의 키가 유독 작았기 때문에, 옆에 있는 단단한 상자를 밟고 올라선 후에야 할머니는 붕어빵을 구울 수 있었다. 붕어빵을 만드는 게 보기보다 쉬운 일이 아니고, 소녀도 처음에 시행착오가 있었던 만큼 우려스러웠으나 할머니는 꼭 붕어빵 장사를 오랫동안 해본 사람처럼 능숙했다.
소녀는 붕어빵을 굽는 안쪽에 다른 사람과 함께 서있는 게 영 오랜만이라 어색하면서도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유가 뭘까? 할머니는 무슨 사연이 있기에 붕어빵을 꼭 직접 구우시려는 걸까? 소녀는 할머니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눈썹까지 찡그리며 잔뜩 집중해서 붕어빵을 굽던 할머니는 붕어빵이 노릇노릇 잘 구워지자마자 딱 한 개만 가지고는 소녀에게 나머지 두 개를 주고는 또 홀연히 사라졌다.
"이건 아가 먹으라고 주는 거야. 특별히 맛있을 거야."
적어도 지금까지 붕어빵 천 개는 먹어본 소녀는, 꼭 남은 붕어빵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맛있는 붕어빵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포장마차에서 아주 많이도 먹어봤다. 그래서 일부러 붕어빵을 먹지는 않게 되었는데, 어쩐지 할머니가 구워준 붕어빵은 매우 먹음직스러웠다. 포장마차를 언제나처럼 깔끔하게 정리한 소녀는 집에 가며 붕어빵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퐁퐁 솟아났다. 소녀의 돌아가신 할머니가 구워주었던, 소녀는 어떻게 해서도 따라갈 수 없던 그 붕어빵의 맛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31일마다 찾아오는 이상한 할머니,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걸까? 내게 어떤 마법을 부린 걸까? 펑펑 울던 소녀는 그날 밤 아주 달콤한 꿈을 꾸었다. 할머니가 처음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던 날, 소녀를 등에 업고 종류별로 가장 맛있게 구워낸 붕어빵을 먹여주던 할머니의 냄새가 생생히 나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