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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16. 2021

기다림에 관한 영화, <트랜짓>을 보고

그러나 그는 계속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영화 <트랜짓>






"누가 먼저 상대를 잊을까요? 떠난 사람일까요, 남겨진 사람일까요?"



나는 무조건 떠난 사람이 먼저 상대를 잊는다고 믿는 편이다. 떠난 사람은 남겨진 사람이 없는 세계에서 적응해야겠지만, 남겨진 사람은 떠난 사람이 부재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법을 새롭게 익혀야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단짝 친구가 이민갔을 때 이걸 처음 느꼈다. 그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내가 떠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별은 두 사람을 같은 무게로 짓누르지 않는다. 만에 하나라도 떠난 상대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실날 같은 희망에 자꾸만 고개를 돌려보게 되는, 남겨진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 더 있다.




영화 <트랜짓>에서 주인공 게오르그는 우연하게 다리에 부상을 입은 작가와 함께 마르세유로 도망가게 되는데, 그 여정에서 작가는 죽게 된다. 게오르그는 그 작가의 신분으로 비자 허가서를 받아내고, 이어 작가에게 기다리겠다는 편지를 보냈던 그의 아내 마리를 보게 된다. 마리는 남편이 자기 편지를 받았으며 마르세유에 올 것이라고 분명히 믿고, 여기저기서 남편을 찾아다니다가 수차례 게오르그와 마주친다. 그때마다 게오르그는 마리에게서 눈을 뗴지 못하고 이내, 마리가 남편을 기다리느라 마르세유를 떠나지 않을 것을, 또 남편이 몬트리올 호에 곧 승선할 것임을 알고는 게오르그와 함께 그 배를 탈 것임을 알게 되는데, 그는 진실을 마리에게 말할 것인가, 마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것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오랜만에 나래이션이 제 3자 입장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는 영화를 봤다. 예전에 작가가 쓰는 대로 실제 인물의 운명이 정해지는 영화를 본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운디네>와 <피닉스>를 인상깊게 본 후, 마침 왓챠에 업데이트된 <트랜짓>을 꼭 보고 싶었다. 다행히 이전에 본 두 편의 영화와는 달리 꼭 극장에서 보지 않아도 좋을 영화였다. 자꾸만 여기저기서 나타나서 시선을 사로잡는 마리의 눈빛, 바에 앉아서 계속해서 마리를 기다리는 게오르그의 눈빛을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올 지도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건 어쨌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므로 삶을 이어나갈 동기 부여가 된다지만, 그것이 죽음이 임박해오는 도시를 떠나지도 못하게 막는다면 삶을 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기약없는 약속을, 내 순서가 오기를, 비자가 허가되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오기를, 마침내 이 지긋지긋한 도시를 떠날 날을 끊임없이 기다린다. 인생은 이렇게 기다림을 기다리고, 기다림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달리 방법이 없어서, 사랑이 모두 끝났음을 믿을 수가 없어서, 사랑했던 이의 죽음을 받아드릴 수가 없어서,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왔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서 계속 기다린다. 기다릴 일이 하나도 없다면 리차드처럼 삶에는 절망뿐이 남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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