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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22. 2021

올해 내가 본 최고의 영화, <그린나이트> 추천


"This world is fit for all manner of mysteries."


  ― 영화 <The Green Knight>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영화 <그린나이트>를 보고 왔다. 개봉한 지는 좀 되었는데,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러닝타임도 길고(130분), 상영시간표가 영 내키지 않았을 뿐더러, 어렵고 잔잔하고 지루하다는 평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다면 반드시 영화관에서 보아야 하며, 극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김혜리의 필름클럽>에서 다룬다고 하여 용기를 내서 보러다녀 왔다. 무엇에 대한 용기냐고? 시간과 돈을 들여 보러갔다가 끔찍하게 마음에 안 드는 영화인 걸 확인하고 뛰쳐나올 위험을 감수할 용기, 내 취향에 맞을지 안 맞을지 모르는 영화를 위해 2시간 10분을 깜깜한 영화관에 갇혀있을 용기이다.





결론은? 올해 본 중 최고였다. 올해 내가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가 오늘 <그린나이트>를 영화관에서 본 것일 정도이다. 영화관에서 보아야 한다고 나도 강하게 느낀 것은, 긴 러닝타임을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매 장면을 스릴 넘치게 보았음에도, 숏이 꽤 길어서 자칫 집에서 보다간 집중력을 잃고 스마트폰 여러번 만지는 새에 중요한 장면이 지나가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상치 못하게 스코어가 굉장히 압도적이어서 음향 좋은 곳에서 보아야 하며, 대부분의 장면이 상당히 어둡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를 반도 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이건 내 느낌이고, 1/10도 이해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이제 필름클럽을 듣고, 유투브에 올라온 GV를 보면서 이 영화에 대한 믿을 만한 사람의 해석을 들어봐야지. 나는 이 영화의 원작은 전혀 모르고, 미리 읽고 가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굳이 보지 않았다. 조금의 예고도 싫어하고, 영화에서 일부터 십까지 모두 체험하는 걸 좋아하는 내 성향 탓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영화는 이와 같다. 어느 크리스마스, '아직' 기사가 아닌 가웨인은 왕과 왕비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위대한 업적을 이룰 것, 기사가 될 것을 압박받는다. 조급해진 그와 왕, 그리고 전설의 기사들에게 녹색 기사가 나타나는데, 그는 하나의 게임을 제안한다. 그의 무기―무시무시해보이는 도끼―를 걸고 내기를 한다. 녹색 기사에게 가하는 정확히 똑같은 공격만큼, 그는 다음해 크리스마스에, 북쪽의 녹색 성당에서 그대로 받을 것이다. 그리고 녹색 기사는 그 무기를 바닥에 내려둔다. 어떤 공격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리는 녹색 기사의 목을 자른 가웨인은, 1년 뒤, 녹색 기사와 약속한 대로 녹색 성당으로 떠난다. 과연 그는 약속대로 목이 잘리고 말 것인가.





내가 영화를 보다가 가장 놀란 점은 녹색 성당이 굉장히 멀리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몇 블록 가면 있는 그런 성당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가웨인 경은 멀고 먼 여정을 떠나는 동안 사기를 당하고, 정령처럼 보이는 여성의 머리를 찾아준 대가로 그의 무기를 돌려받고, 수상한 가족을 만나고, 은근히 함께하길 바랐던 동행, 여우를 만난다. 여정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그리고 여정의 내내 그가 요구받는 것은 기사다운 행동거지이다. 그는 목이 잘리려고 녹색 성당으로 굳이 돌아가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명예'라고 답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녹색 기사 앞에 무릎 꿇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던 그의 뒷모습이, '이게 끝'이냐고 묻던 그의 외침이 말해주듯, 그의 삶은 그저 게임 하나에 저당잡혀서는 안 되었다. 그럼 무엇에? 그 답은 아마 가웨인 경 외에는 아무도 찾지 못할 것이다.





보는 내내 앤워가 이렇게까지 (잘) 크다니, 감탄했으며, 내가 종합예술로서의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하며 행복감에 젖어있었다. 나는 이 영화에 나오는 지혜로우면서도 모든 답과 해결책을 손에 쥐고 있는 듯한 여성들이 너무나 좋았다. 가웨인 경은 자아도취된 채,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짓눌린 채 녹색 기사의 목을 베어서는 안 되었다. 그가 주는 그것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녹색 기사는 수상한 집에서 만난 여성의 말대로 자연, 그리고 모든 사랑과 열정의 불꽃이 떠난 뒤에 우리를 뒤덮어버리는 것, 그러니까 결국 모든 것을 이기고 최종적으로 남는 그 무엇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미 녹색 기사의 목을 벤 가웨인 경은 언젠가 그의 목이 잘릴 날만을 불안에 질린 채 기다린다. 그가 녹색 기사의 목을 벤 것은 그 자신의 자멸의 시작이었다.





꼭 우리가 가웨인 경이 아니고 녹색기사와 게임을 시작한 적 없더라도, 우리 모두는 우리가 주는 것을 받는다. 결국 언젠가는 우리가 뿌린 씨앗을 책임지고 거둬들여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가 사랑스럽고, 내가 채 다 이해하지 못한 이면의 해석을 끌어내고 싶다. 왕의 부름에도, 사랑하는 여인의 간청에도 제대로 응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무엇을 쫓고 있는지, 무엇에 뒤쫓기고 있는지도 모른 채 죽음이 기다리는 성당으로 나아가는 가웨인 경은 그를 보호하는 마법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비탈길을 마구 내달린다. 나는 가웨인과 얼마나 다른가, 이 오래된 작품이 왜 아직까지 위대하며,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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