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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26. 2021

마음에 봄을 선물하는 드라마, <너는 나의 봄>


몇 년 전,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을 스치듯 보고는 저 사람은 자기애가 엄청 강해서 우울할 일은 없겠다고 슥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한 사람이지만 다소 자신을 꾸며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자기 자신을 아주 애지중지하는 것 같다고, 그러니 '나처럼' 사는 게 힘들 일은 없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었던 내게 조금 실망했다.




예전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만두는 내게, 이 직장생활이 네 인생에서 제일 힘들지 않았냐고 날 가장 괴롭게 하던 상사가 물었다. 나는 답했다. 전혀요. 그도 나를, 내 표면적인 몇 가지 단서로 조합해 꽤나 인생 편하게 살아온 여자애라고 판단했던 것을 그간의 그의 태도로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판단이 그가 나를 더 험하게 대하고 탐탁치 못하게 생각하던 수많은 이유 중 하나였던 것도.




사람을 아주 깊이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 지금껏 살아있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말간 얼굴을 하고 때로는 싹싹하고 꽤 씩씩해서 겉보기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을 줄은, 지금 그의 작은 흠처럼 보이는 행동양식, 성격들이 그가 어떻게든 이 땅에 발 붙이고 살아보려고 발버둥친 결과물 중 하나라는 것을.




드라마 <너는 나의 봄>에서 주인공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는 설정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무섭다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 유난히 사는 게 벅차게 느껴져서 내 인생의 계절에 봄은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사람, 사람들 다 알아서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유독 이 모든 게 어려운지, 숨 쉬는 게 왜 형벌처럼 느끼는지 늘 물음표가 떠나니는 사람들도 간절히 원했던 위로를 찾을 수 있다.




내가 가장 위로받았던 대사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면서 엉엉 우는 다정이에게 영도가 건넨 말이었다. 만약 당신 앞에 그 어린아이가 있다면, 뭐라고 말하겠느냐고.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설령 그 자신이 아무 잘못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더라도 너무 가혹하다. 그러니 그 어린아이에게 나를 대하듯, 지금의 나이와 힘과 경험이 쌓인 나인 것처럼 생각하고 재단하고, 몹시 혼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 안의 어린아이를 마주할 때도 그렇게 가혹해지기가 쉬운 모양이다. 나도 힘들었는데, 너도 그쯤은 힘든 거 괜찮아. 너도 촘 참아보라고.




드라마 <너는 나의 봄>은 최종회까지 마음을 다독여주는, 오랜만에 만난 봄 같은 드라마였다.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는 그만큼 거칠어지거나 부조리해지기 마련인데, 이 드라마는 모든 사람의 가장 선하고 여린 부분을 건드리고 보여준다. 작가가 세상을 보는 눈이 이렇게 드러나는 것 같아서, 나는 너무 좋았다. 아직 봄을 기다리고 있는 당신께, 봄을 맞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는 두꺼운 코트 안에 몸을 푹 숨긴지 오래된 당신께, 봄같은 드라마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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