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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7. 2020

몸, 나의 소중한 몸

<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저

서점 안을 천천히 누비고 다니면서 눈에 띄는 책을 물색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내 마음에 드는 책들이 꼭 있다. 제목이나, 표지, 내가 좋아하는 저자, 혹은 인상깊은 띠지 등등. 이유는 많다. <바디 : 우리 몸 안내서>도 꼭 그랬다.

 나는 모든 책이 가장 좋은 시기에 나를 찾아 온다고, 또 부른다고 믿기 때문에 이 책을 바로 사지 않기가 어려웠다. 고심하다가 결국 읽지 않은 빌 브라이슨의 다른 책과는 달리, 이 책은 내 마음에 쏙 들 것이 분명했다. 팔이 아픈 고로, 종이책은 아니고 전자책으로 사서 읽었다. 이것이 전자책의 매력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것!

 사실 이 책은 내가 본래 가장 좋아하는 그런 분야의 책이다. 끊임없이 새롭고도 유익한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몰랐던 세계를 향한 문을 열어젖히는 동시에 유머감각이 있는 책. 빌 브라이슨은 내가 공식적으로 좋아한다고 밝히기는 조금 꺼려지는 작가다. 그러나, <바디>에서만큼은 그의 유머에 문제의 소지가 될만한 지점이 없었다고 본다. 



 사실, 이 책을 읽기로 최종적으로 결심한 건 썬데이 타임즈에서 쓴 다음의 평론 때문이었다.

 2019년 올해의 과학책 : 흥미로운 사실들과 있을 법하지 않은 일화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자신이 엄청난 양의 해부학 지식을 소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한다.


 1. 이 책은 나에게 몇 가지 실질적인 교훈을 주었다. 그 중 하나는 오랫동안 앉아만있지 않는 것. 나는 앉아서만 일하는 수많은 현대인들의 생활방식에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데,(물론 문제의식을 갖는 것으로만 그치고 있긴 하지만) 이 책에서 그 점을 여러번 정확하게(그래서 좀 아프게) 꼬집어주어서 좋았다. 또 한가지, 체중을 과도하게 늘리는 것은 볼링공 두 개를 허리에 달고 다니는 것과 같은 부담을 우리의 몸에 준다는 것. 무슨 말을 하겠는가? 반성할뿐..

우리의 게으르거나 과도한 현대 생활습관에서 비롯된 질병이다. 개략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수렵채집인의 몸을 지니고 태어났으면서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건강해지고 싶다면, 우리는 고대 조상들이 했던 방식에 좀더 가깝게 먹고 움직여야 한다. 덩이뿌리를 캐먹고 야생동물을 사냥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가공식품과 가당식품의 섭취를 대폭 줄이고, 더 적게 먹고, 더 운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2. 읽는 내내 나의 몸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한지 새롭게 깨달았다. 전혀 몰랐던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 약간은 존경하는 태도로 대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다.

 나는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는 이야기에 강하게 이끌린다. 대학동기는 머리가 복잡할 때 <코스모스>같은 책을 읽으면 좋다고 추천해줬었다. 나는 시나 우화를 읽는 걸 더 즐기고, 그보다는 <숨결이 바람될 때>나 남궁인 작가의 저서 등이 도움이 많이 됐다.

 책에서 특히 좋았던 것은, 우리 몸의 일부분에 강하게 매혹되어 있으며, 그 신비를 풀려고 노력하는 수많은 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우리 몸이 하나의 우주라는 걸 이제는 안다.

 우주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 있다. 바깥 우주를 아무리 더 멀리 여행한다고 해도, 우리의 두 귀 사이에 있는 무게 약 1.5킬로그램의 물컹거리는 덩어리만큼 경이로우면서 복잡하고 고도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찾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벤은 손목을 잠시 자세히 검사한다. “그런데 손목을 베서 자살을 하려는 시도는 안 하는 게 좋아요. 손목에 있는 것들은 모두 근막이라는 보호 띠로 감싸여 있어요. 그래서 동맥을 자르기가 정말이지 쉽지 않아요. 손목을 벤 사람들은 대부분 자살에 실패해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인다. “또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서 자살한다는 것도 사실 정말 쉽지 않아요. 다리는 일종의 충격 흡수 장치가 되거든요. 몸이 정말로 뭉개질 수 있지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자살하기란 진짜로 어려워요. **우리 몸은 죽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시신이 있는 커다란 방에서 이런 말을 듣고 있으니 조금은 역설적인 듯하지만,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3.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를 제공한다는 것도 포인트. 때때로 사춘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좀 부끄러운데, "전혀 다른 종류의 뇌"라는 저자의 말이 내겐 큰 위로가 된다. 게다가 빌 브라이슨은 덧붙인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전혀 놀랍지 않을 거라고.

 또한 노화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있었다. 의식을 할 때면 하루하루 흘러가는 이 세월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다. 나이가 아주 많이 든 나와 지금의 나는 굉장히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어떻게든 열심히, 무엇이든 더 많이 해보고 싶어진다.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는 무리이지만.

 신경학 교수인 프랜시스 E. 젠슨은 2008년 「하버드 매거진(Harvard Magazine)」에 이렇게 말했다. “십대의 뇌는 그저 조금 덜 성숙한 어른의 뇌가 아니다.” 그보다는 전혀 다른 종류의 뇌이다.



4. 아직도 인간은 자기 몸의 신비(뇌, 내분비계 등)를 다 풀지 못했다는 걸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점이 좋았다. 우리는 아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다. 조금만 세월이 지나면, 지금 우리가 가진 건강과 몸에 대한 상식을 아주 우습게, 말도 안되게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다. 

다음은 내게 인상깊던 구절이다. 나는 수면과 숙면에 굉장히 집착하는데, 바로 이 "리듬"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계절과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의 변화에 따른 내 몸의 변화도. 아무리 생각해도 현대인은 너무 많은 일하고, 너무 적게 잔다. 나는 저녁은 되도록 집에서 먹고, 씻고 운동하고 책을 조금 읽고,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서둘러 자야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약간 특이한 인간같다는 자괴감도 조금은 갖고 있다. 학교 다닐 때는 동아리 모임을 10시쯤 한 적이 있는데, 난 그 때 아예 머리가 멈추므로(..) 동아리원들의 양해를 한몸에 받으며 방에 가서 잔 적이 있다. 

  최근에 포스터 연구진은 인간이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계절 리듬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자해, 자살, 아동 학대라는 예기치 않은 많은 영역에서 계절 리듬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해왔어요. 이런 것들의 발생 빈도가 계절에 따라 높낮이를 보이는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6개월 차이를 두고 동일한 패턴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북반구에서 사람들이 봄에 많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 자살률 증가 등 — 6개월 뒤 봄을 맞은 남반구에서도 같은 양상이 나타난다.


5. 소소한, 그리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th발음(feather)으로 변한 수많은 dd 단어들 중 bladder은 유일하게 심지를 곧게 지키고 있는 단어이며, 이런 특별한 기관은 bladder밖에 없다는 일화가 너무 재밌고, 인상깊었다. 이런 이야기를 빌 브라이슨 말고 누구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의학 발전에 혁혁한 공헌을 한 연구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아주 좋았다. 다양한 이력의 사람들이 구비구비 인생길을 따라 의학의 길로 들어섰고, 결국은 지금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았다는 것.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도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그런 일을 하며 살게 되지 않을까? 싶은 기대를 해본다.

 다음은 내 마음에 와닿았던 이야기다. 꽤 괴팍한 의사 잭슨에게 감동을 준 사랑스러운 아이의 일화. 

 “그런 뒤 아이는 물 컵을 든 간호사의 손을 살짝 옆으로 밀고는 내 손을 잡고 입맞춤을 했다.” 잭슨은 자신의 평생에 감동을 받은 듯이 느껴진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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