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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Sep 05. 2021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 추천 후기

그 시절 나는 사랑을 위해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을 했어요.





 시선을 잡아끄는 포스터와 제목, 그리고 호평뿐인 후기 때문에 <사랑 후의 두 여자>―원제는 <After Love>―가 너무 보고 싶었다. 국내 정식 개봉은 내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을 수 있어서 굳이 스케줄을 끼워 맞춰서 보고 왔다. 내 예상과는 달리 퀴어물은 아니었던, 90분의 짧은 러닝타임에 잘 짜여진 한 편의 시같은 이 영화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나의 엄마아빠 또래, 그러니까 30년 이상 결혼생활을 지속한 부부가 보면 마음의 울림이 또 다를 것 같다.





 주인공 메리는 남편 아메드에게 커피를 내려 갖다주던 중 그가 조용하고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는 걸 알게 되고, 곧이어 죽은 남편의 휴대폰으로 오는 메세지를 통해 G라고 저장된 여성이 그의 지속적인 외도 상대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메리는 G를 찾아가기로 결심하는데, 인력사무소에서 소개받아 청소하러 온 여성인 것으로 오해한다. 공연히 청소를 하러 들락날락거리던 메리는 G에게 남편과의 아이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남편이 솔로몬이라는 그 아이에게 전혀 좋은 아빠가 되지 못했음을, G는 남편이 영국에 따로 아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메리의 정체를 알게 된 G는 도리어 메리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그들은 아메드의 무덤을, 긴 결혼생활 내내 메리가 그와 함께 살던 집을, 남편이 살아있던 때에 그를 기다리며 서있던 절벽 끝을 함께 찾아간다.






 글쓰기 모임을 하던 중 알게 된 문장, '누구나 벼랑 끝에 서있다'는 말을 영상으로 구현해낸 작품이었다. 이때 그들이 무너져내리기도 하는 그 벼랑 앞에서 버티고 서있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품은 사랑이 그들 자신을 단단히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처럼 '사랑받고 싶음'이나 '애정을 갈구함'이 아닌, 그들이 하는 사랑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좋았던 장면들이 여러 개 있었다. 남편을 위해 개종한 메리가 정해진 시간 정해진 규율에 맞게 기도를 하다가 엎드려서 그대로 우는 장면, 그리고 남편의 외도 상대를 만나러 프랑스로 배를 타고 가다가, 자신의 마음 한 귀퉁이와 마찬가지로 무너져내리는 해안 절벽을 보며 경이, 두려움, 충격에 휩싸인 메리의 표정, 그리고 아메드와 메리가 살던 집에 찾아와 아메드가 눕던 자리에 쥬느브비에는 눕고, 메리는 늘 그가 눕던 자리에 나란히 누워있는 장면. 




 사랑은 두 여자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첫째로, 심한 충격이 그들을 휘감았고, 그 다음에는 영영 답을 찾지 못할 질문들이 남았다. 특히 메리에게는 더더욱 많은 질문이. 남편이 나를 떠날 생각이 있었을지, 그는 왜 나를 파키스탄 사람이라고 말했을지, 그는 그 여자에게, 또 솔로몬에게 자기가 배워야 했던 언어를 가르쳐줬을지 등등. 그리고, 내가 짐작하기로는 평화와 그들 내면에 자리잡게 되었다.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따금씩 터져나오는 감정의 울림이 또다시 그들의 삶을 뒤흔들겠지만, 사랑은 그런 것들을 모두 남겨놓기 마련이니까.





 메리가 아메드의 아내였다는 것을 알게 된 쥬느브비에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당신은 누구인지, 분노에 휩싸여서 마구 소리치고 해명을 요할 때 메리는 반복해서 말한다. "나는 아메드의 아내예요." 그것이 메리에게는 메리의 정체성이고, 영국에서 프랑스까지 건너와 죽은 남편의 외도 상대 집을 찾아 매일 청소해주는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게 된 이유이고, 엄마에게 대드는 솔로몬에게 손찌검까지 불사한 이유였다. 히잡을 쓰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아메드에 맞추어 요리를 하고 그의 방식대로 먹고, 그가 돌아올 법한 시간에 나가 '미친듯이' 손을 흔들던 이유.




 

 최근에 본 사랑에 관한 영화들과 비교를 하자면,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연애가 피고 지는 과정을 꽃같이 그려낸 영화라면, <우리, 둘>은 사랑을 눈에 선명하게 보이도록 그려낸, 그들의 젊은 시절이 그리워지는 영화라면 <사랑 후의 두 여자>는 사랑을 위해 두 여자가 겪어야했던 지난 세월을 나조차 모두 알 것만 같은 영화였다. 너무나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결혼도 고통도 아닌 사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두 여자 사이에는 남자아이가 하나 있다. 역시 자기의 벼랑 앞에 서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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