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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Sep 11. 2021

영화 <바쿠라우>를 즐겁게 보고

 왓챠피디아를 꽤 신뢰하는 편으로, 예상별점이 2.3인 <바쿠라우>를 보기까지 용기가 꽤 필요했다. 게다가 2시간 12분이라는 무서운 러닝타임의 압박으로 고민을 했으나, 팟캐스트 <필름클럽>을 통해 영화 <그린나이트>를 그의 방식으로 끝내주게 해설해준 김혜리 기자님이 별점을 4.5점 준 데다 다음주에 다룰 영화이기 때문에 반드시 봐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음 에피소드도 꼭 듣고 싶었기 때문.




 결론적으로, 오프닝부터 강렬했으며, 시간의 흐름도 잊을만큼 흡입력 있는 각본에, 스코어도 끝내줬던 이 영화를 보는 순간순간이 너무나 즐거웠고,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 물론, 영화를 반도 채 못 이해한 것 같다. 그러나 관객의 수만큼 영화도 새롭게 해석되는 것이고,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딱 내가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 



  

 우리는 영화 시작과 동시에 한 여성과 함께 브라질에 위치한 바쿠라우라는 마을에 들어선다. 마을로 향하는 길에서 우리는 이 마을이 정치적으로 고립 상태에 놓여있음을 알게 된다. 수도는 끊겼고, 마을 주민 중 한 명은 수배 중이다. 우리와 함께 마을에 들어선 이 여성은 이 마을의 족장이었던 카르멜리타의 손녀로,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먼 길을 온 것이다. 마을에 들어온 그는 마을 주민으로부터 작은 알약을 받고는 자연스럽게 삼킨다. 바쿠라우 주민들이 모두 복용하는, 나중에 밝혀지는 이 알약의 정체는 '강력한 향정신성 약물'이다.


 심상한 날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바쿠라우 마을이 지도에서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심상치 않던 마음의 분위기는, 물을 싣고 오는 트럭이 총알받이가 된 마당에 요란하게 바이크를 타고 등장한 두 명의 낯선 인물 탓에 심화된다. 이들은 마을의 위성 신호를 끊고 어디가로 향하는데, 바쿠라우 마을을 완전히 고립시키고 전멸시키려는 의도로 결집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들이다. 바쿠라우 마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이들은 왜 그렇게까지 마을을 공격하려고 하는지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이다.





 영화를 본 후 내가 느낀 교훈은 이것이다. 단순한 유희에서건, 사명감 또는 두려움에서건 어떤 이유로든 타인을 해치고자 무기를 쥐고 있는 자는 바로 그 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해를 입게 된다. 나는 늘, 내 안에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화살이 되어 내 주위의 사람들을 해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산 만큼 죽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 내가 품고 있는 그 독 때문에 내가 크게 해를 입을 것이라는 것. 깨닫지 못했지만 늘 소중하게 생각했던 날 잃게 되리라는 것이다. 





 바쿠라우 마을 내에서도 얽히고 섥힌 갈등은 많았지만, 바쿠라우 마을을 전멸시키려는 사람들 간에도 분란이 꽤 잦았는데, 그중 하나의 이유는 한 남자가 손전등을 든 어린아이를 죽였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를 작은 사람으로, 어른을 몸만 자란 아이로 보는 나로서는 어린아이와 어른을 각각 죽이는 것이 큰 차이가 있는가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또 마이클이라는 대표 악과 같은 인물은, 사람을 파리마냥 죽이는 인물은 '여자는 안 죽인다'고 말한다. 이들이 각각 '아이'와 '여성'에 대한 절대적 우월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보호할 힘도 권리도 없으므로 공격할 대상으로도 여기지 않기 때문에 보호하려는 제스쳐. 이것은 동일한 이유로 대상을 전멸시켜도 조금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는 태도와 한끗 차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몹시 궁금해서 견딜 수 없던 '바쿠라우 역사 박물관'을 영화 후반부에서야 둘러볼 수 있게 되는데, 바쿠라우 역사란 곧 바쿠라우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음이 밝혀진다. 왜 바쿠라우 마을을 그렇게까지 공격하고 못살게 구는지,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는 마음을 전혀 가지지 않고 게임하듯 살상하고 즐길 수가 있는지 보는 내내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현실에서 유사하게 봐왔던 일들이라고도 생각했다. 인간이 자기 자신, 자기 가족, 마을을 지키려는 그 마음과 그때 나오는 힘은 결코 무시할 것이 못 된다. 남을 쉽게 해치는 일들이 자기 자신도 같은 해를 입었을 때 심하게 고통받으리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듯이. 황금률이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사실을 또다시 마음에 새길 수밖에.





 꽤 잔혹한 장면들이 나오지만, 내 영혼을 상하게 하는 그런 장면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장면들, 영화를 더 완성도 있게 빚어내는 과정에서 스크린에 비춰줄 필요가 있는 장면들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래도 영 이런 부분에 취약한 사람들은 주의가 필요하다.




 이제 나는 즐겁게 <김혜리의 필름클럽> 다음 에피소드를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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