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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Sep 06. 2021

영영 부치지 않을 편지 #2

 꿈을 꿨어요. 잠깐 보아도 아주 좋아보이는 사람과 같이 있던데요. 사랑을 속삭이면서. 엄청 행복해보였어요. 그게 내가 줄곧 바라던 거였는데, 나랑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스스로 자신있는 애정이 넘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 그런데 왜 그와는 너무 다른 내 자신이 싫고, 가슴이 이렇게 조여오는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하나도 그립지 않다는 말, 다 거짓말이었어요. 이제는 만나는 게 두려워진 것 뿐이었어요. 한 번이라도, 우연히 스치기만이라도 했으면, 잘 지내고 있는지 소식이라도 전해들었으면. 


 나랑은 둘이 안 어울릴 거라고 제가 혼자 미리 계산을 마쳤었거든요. 그런데 어쩌면, 서로에게 꽤 잘 맞는 커플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물론, 그때의 저는 지금보다 미성숙하고, 또 사랑을 받을 줄도 몰랐고, 그보다 앞서 누가 나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조차 나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도 한데요. 그래도 자꾸 이런저런 쓸모없는 상상을 해보는 건,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자꾸 뾰족하게 저를 찔러대기 때문이에요. 비겁하게 다른 사람과 내 마음을 모두 움켜쥐고 조금도 나누지 않으려했던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사람의 감정은 그렇게 질식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는 몰랐어요.


 차라리 볼 꼴 못 볼 꼴 모두 보고 아주 끔찍하게 이별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러면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전하지 못해서 아쉽고 미안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글로 써보니 선명하게 보여요. 무엇보다 아쉬운 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더 보내지 못했다거나, 웃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거나 이런 게 아니라, 그때만 유효했을 그때의 감정을 전하지 못한 채 소중한 때를 지나쳐왔다는 것을.


 내 모든 행운을 그대 발 앞에 쏟아붓고 싶어요. 하늘 아래 멀리 사는, 이제는 생각도 하지 않을 누군가가 당신의 행복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는 걸 당신도 안다면 좋을텐데. 사실 그럴 필요도 없을 거 알아요. 선한 품성을 가진 좋은 사람이고, 그래서 모든 행운이 자연히 그대를 따를 테니까. 


 그래도 꿈에서라도 봐서 좋았어요. 나는 해준 것도 해줄 것도 없는데 매번 이렇게 받기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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