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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30. 2021

달력과 남은 2021년의 다짐


내 책상 위의 달력을 보고 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클래식한 디자인에 세로로 조금 더 긴 탁상형 달력. 네이버 캘린더 어플을 사용하는 데다, 다이어리까지 산 나는 연초에 이 달력이 너무 사고 싶어서 내 이성을 열심히 설득해야 했다. 그러니까 합리화를 했다는 말인데, 한눈에 달력을 보며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싶다, 세월의 흐름을 어플이나 컴퓨터를 켜지 않고도 헤아려보고 싶다, 등등이었고,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달력을 볼 때마다, 또 넘길 때마다 세월이 나를 비껴 지나가는 것을 손으로, 또 눈으로 절감했다. 업무 일정이 빼곡히 써있는 사무실 달력을 넘기는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그런데 이 달력이 몇 장 남지 않았다. 충격적이게도. 이번주를 시작하며 일찌감치 9월로 미리 달력을 넘겨놓았다. 추석이 들어있는, 풍성한 9월. 나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내가 좋아하는 밤과, 햇밤고구마와 배, 감을 슬슬 기대해볼 수 있는, 이제 끈적끈적한 선크림을 온 몸에 칠하지 않아도 산책을 만끽할 수 있는 가을이 오는 것이다. 작년 가을, 마스크를 쓰고 이제 더 추워지면 산책이 어렵겠다며 열심히도 걸어다녔는데, 바로 그 가을이 1년만에 돌아오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처서가 지나기도 했거니와 이제 캐롤을 슬슬 꺼내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밤에는 온수매트를 꼭 틀고 자야 하는데, 이 말은, 이제 2022년을 맞이할 준비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2년? 그때 내 옆에는 누가 있을까,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까, 그저 조금 더 나이가 든 모습일까. 희망하건대, 달리기를 꾸준히―그렇다. 나는 벌써부터 한겨울에는 어떤 복장으로 안전하고 따뜻하게 달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하고 있을, 지금보다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한 나이기를.




나는 이번년도를 맞이하며 비장하기까지 한 어떤 각오를 마음에 다졌었는데, 이렇게 가만히 나이들어서는 안 되겠다, 내 인생에 무슨―무엇이든―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는 각오였다. 나는 지금 내 모습이 나의 최선이 아니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그렇다면 내가 믿는, 내가 되어야 하는 내가 되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나는 지금 너무 겁이 많다. 내가 단단히 쌓아올린 성과 가시로 단장한 울타리 안에 숨은 채로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는 데 익숙해졌다. 상처받기 싫어서, 그리고 지금이 익숙해서.




언제나 퇴사를 꿈꾼다든가, 실은 나는 전업작가가 되고 싶은 오랜 꿈이 있다든가, 피아노를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고 싶다든가 이런 인생의 항목들 말고, 그래서 나는 이 삶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런 전체적인 방향성을 돌아보려고 한다. 나는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고 있는가. 내 안에 축복이 흘러넘쳐서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가닿는 그런 삶을,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비와 함께 춤을 추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 나를 정비하는 시간을 잠깐 가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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