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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29. 2021

100일 글쓰기를 하고 깨달은 것


오늘로 매일 글쓰기를 한 지 딱 100일째다. 혼자라면 완주할 수 없었을 이 과정을 앞에서 끌어주고, 함께 달려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도 고되지 않았다. 큰 목표 없이 시작해서일까, 완주하는 이 날이 기다려지지도 않았고, 그저 아무 생각없이 매일 아침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까지 매일의 글을 끝내는 게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예전의 나는 아무도 읽지 않을 이 글을 써내려가는 게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회의에 들기도, 모니터 앞에 앉아서 혼자 글쓰며 시간을 보내는 보내는 대신에 다른, 내가 생각하기에 더 생산적이고 재미있는 일들을 하고 싶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뒤집혔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늘 하고 싶었던 것, 매일 하려던 것을 하나씩 해나가는 중인데, 그중 하나가 매일 글쓰기였다. 이 과정을 신청하기 전에 생각했던 건 내게 정말 매일매일 그만큼의 쓸 것이, 또 쓸 시간이 있을까 였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하지 못할, 100일간 글쓰기를 하며 느낀 점을 글로 남겨놓고자 한다.




1. 글감은 매일 있다. 중요한 건(또는 문제는) 글쓰는 시간을 따로 정해놓는 일.

쓸 게 없어서 고민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쓸 수 있는 여러 소재 중에 내가 가장 글로 잘 풀 수 있을 것 같고, 가장 머릿속으로 정리가 되어있고, 무엇보다 그 시점에 제일 쓰고 싶은 걸 고르는 게 일이었다. 그건 언제나 내 직감이 대신 해주는 일이었으므로 별로 어렵지 않았다. 다만, 글을 쓰다가도 한 편의 완결된 글을 완성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느껴지면, 당장은 접어두고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옳았다.



내게는 출근 전 2~30분 정도의 시간이 글쓰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퇴근 후에도 충분한 시간은 있지만, 하루종일 긴장해있다가 집에 오면 데친 시금치가 되어버리는 내게 지난 9시간처럼 또 모니터 앞에 앉는 일은 고역이었기 때문. 출근 시간이 이른 편이라 5시에서 6시쯤 일어나야 했는데, 아침 잠을 충분히 자야하는 나로서는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하루의 시작으로 이부자리 정리하듯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정돈하는 일이 늘 즐겁고 보람찼다.




2. 아직 내 안에 쓸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

나는 쓰면 쓸수록 내 곳간이 바닥난다고 믿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100일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가장 하고 싶었던 것, 예를 들면 내 유년 시절의 기억 조각조각을 끌어모아 글로 남겨두는 것, 매일 읽는 글을 단초로 내 생각과 느낀 바를 정리하는 것, 짤막한 나뭇잎소설을 매일 완성하는 것 등은 거의 시도도 하지 못한 채 100일이 지나가버렸다. 매일의 일상을 지탱하고 기록해두기 위해 쓰는 것으로도 벅찼다. 이상하게, 글쓰기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글 쓸 거리들이 생겨난다. 쓰면 쓸수록 목이 마른다. 아직 내가 쓰고 싶은 건 한번도 제대로 꺼내놓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쓰고 싶은 걸 모두 쓰기 위해서 '어떻게 글 쓸 시간을 더 확보하느냐'가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음 3번에 올 깨달음을 보면 꼭 그렇게도 볼 수만은 없다.




3. 글을 쓰는 근력이 별도로 있어, 매일 조금씩 단련해야 하여 키워나가야 한다.

생각보다 글을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글과 상관없이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생각하여 정리해두었거나, 글을 쓰려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미리미리 빚어둔 반죽이 있어 막상 글쓰기 위해 자리잡고 앉았을 때는 크게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었던 거였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의 내가 쓸 게 이만큼 많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있어도, 글을 쓰다보면 '오늘은 더이상 쓸 수 없겠다'고 느껴지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나의 여유시간이나, 체력과는 관계없이 온전히 글도 쓰기 위한 근력이 따로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물론, 100일간 매일 글을 쓰면서 그 근력이 어느 정도 길러졌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쓰는 것, 그리고 글쓰는 시간을 조금씩 더 늘려나가는 것만이 해결책인 것 같다. 지금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4. 글을 쓰고 싶은 소재는 생각났을 때 즉시, 최대한 구체적으로 저장해두는 것이 좋다. 기억은 쉽게 휘발된다.

매일 글쓰기가 어렵지 않았던 것은, 당장 쓰고 싶지만 아직 정리가 덜 되었거나, 아니면 지금 당장은 못 쓰는 글들을 그때그때 저장해두었기 때문이다. 네이버카페에서 100일 글쓰기를 진행했기 때문에, 네이버카페에 그때그때 제목과, 짤막하게라도 어떤 식으로 쓸지 적어두었다. 예전에는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쓰고 싶은 글의 제목이나 소재만 적었는데, 나중에 열어보면 그래서 이 글을 어떻게 풀어가고 싶다는 거였는지, 정확히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내버리기는 아까운 소재라 처치 곤란일 때가 많았다. 내 기억을 믿지 말고, 수첩이든 네이버 메모장이든 어디에든 최대한 구체적으로, 될 수 있으면 쓸 수 있는 만큼이라도 미리 적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5. 생각보다 UI도 중요하다.

내게는 블로그나 브런치보다 네이버카페에서 글쓰는 화면이 가장 잘 맞았다. 어느 화면을 켜놓고 쓰느냐에 따라서 내가 어떻게 구성하여 글을 쓸지, 어떤 문장으로 풀어낼 지가 꽤나 정해진다. 자기 자신에게, 또 쓰고 있는 글에 맞는 화면을 찾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갑자기 글이 모두 날아가지 않을 정도로 안정감도 있어야 한다.




6. '함께'여서 가능한 일들이 분명히 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부끄러워할 것 없음.

매일 글쓰기는 늘 하려고 생각만 했었다. 그동안 왜 나는 의지가 부족한지 자책하기도 했고, 100일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에는 혼자만 봐야하는 글이 있어서 따로 떼어놓고 쓰는 게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100일째가 되니 어떤 일들은 분명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걸 인정해야겠다. 의지력도 한계가 있는 자원 중 하나인데, 이미 너무 많은 의지력을 흩뿌리며 일상을 견디는 내게 더 많은 하중을 줄 필요는 없다. 계속해서 혼자 언젠가는 매일 글쓰기를 해야 하는데, 생각하고 있었다면 지금껏 시도도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전혀 고생스럽지도, 벅차지도 않은, 언제 지나간지 모르겠는 100일이 되었다.




7. 글쓰는 행위는 꼭 명상과도 같은 치유의 효과가 있다.

 지난 100일간 내 마음건강을 지켜주었던 글쓰기가 있어 행복했다. 분량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는 만큼만, 그저 완결된 하나의 글로 정리하려던 게 오히려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만 내 일상으로 글쓰기를 집어넣는 게 얼마나 이로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사람도 만나고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듯이, 다른 모든 활동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주일에 한두번 쓰는것과, 매일 쓰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아무리 적은 분량이어도, 이제 나는 '쓰는 사람'으로 자리잡았다는 자기 정체성이 형성되어, 내 일상을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루틴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매일 글쓰기에는 내 뿌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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