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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Oct 02. 2021

영화 <인 디 아일>을 보는 내내 널 생각했어

 요즘 독일 영화를 즐겨 보고 있다. 특히 한참 기획전을 하고 있는 감독 크리스티안 페촐트를 시작으로 그 특유의 흐르는 듯한 발음, 끝내주는 영화 음악, 배우 폴라 비어와 프란츠 로고스키, 역사에 대한 뿌리 깊은 함의 등에 반했다. 추석 연휴에는 <작가 미상>과 <프란츠>를 봤는데, 감상을 남겨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정리가 안 되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음악을 잘 썼으며 굉장히 잔잔한 영화라는 평이 많던, 게다가 왓챠피디아 예상 평점도 4.2로 높던 <인 디 아일>을 봤다.





 실은 예전만큼 영화나 소설이 재미가 없어서 끝까지 보기가 어렵다. 늘 같은 생각이다. 이걸 내가 왜 끝까지 봐야 하지, 스스로 납득할 수 없으면 이미 결제했어도, 오늘까지만 볼 수 있어도 중도에 포기한다. 창작물의 재미를 찾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내 집중력의 문제이기도 한데, 자꾸 온 마음과 신경, 내 정신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로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화면 전환이 느린 이 영화 <인 디 아일>은 흥미를 한시도 놓지 않고, 왜 이 영화를 끝까지 봐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은 채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잘 만든, 좋은 영화이며, 무엇보다 지금 내게 꼭 필요했던 영화였기 때문.





 <트랜짓>과 <운디네>에서 이미 봤기에 친숙한 배우 프란츠 로고스키가 주연을 맡은 <인 디 아일>은, 공사판에서 일하던 주인공 크리스티안이 슈퍼마켓 음료파트에서 일하게 되며 생기는 일들을 그린 영화이다. 끔찍하게 말이 없는 데다 상반신 곳곳에 문신이 가득한 그는 그리 순탄치 않은 과거를 보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무거운 상자를 번쩍번쩍 들 일도 많고, 지게차 사용법도 익혀야 하고, 따뜻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친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그를 혼란에 빠뜨린 것은 근무 첫 날 보고 사랑에 빠진 마리온이다. 캔디류에서 일하는 마리온과는 근무표가 바뀌면 한동안 얼굴도 보기 어려운데, 게다가 그는 남편까지 있다고 한다. 그가 마리온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 된다. 이 영화의 끝은 어떻게 될까, 답 없는 사랑은 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





 숏이 긴 이 영화를 보는 틈틈히, 이 영화가 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에 꼭 이런 영화를 또 보고 싶어서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찾아보았다. 영화를 보는 순간을 충분히 즐길 수도 있었을텐데. 요즘 내가 어려워하는 문제는 어쩌면 이런 내 성향, 조급하고 미리 미래를 모두 안 채로 넘어가고 싶은 이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수십차례 돌려보고, 돌다리도 오랜 기간 두드려 본 다음에야 건너갈 수 있는 내 성향 때문에. 결국은 사람이든 상황이든 모두 내 온 몸으로 겪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일텐데도 미련한 짓을 하고 있다.





 <인 디 아일>은 잔잔한 음악으로 시작하는 시작부터 파도소리로 맺는 끝까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쩌면 인생은 이런 건가봐. 바다가 없는데도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것. 그런 관심이 삶을 살 만하게, 아름답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상황과 엮여있는 질문들이 둥둥 떠다녔다. 마리온에게 정신이 팔린 크리스티안을 모두가 쉽게 눈치 챘듯이, 너와 내 마음은 어디에서 얼마나 표가 날지―사랑은 왜 이렇게 숨기기 어렵고 티가 나는지―, 너도 크리스티안처럼 한번 얼굴 보기도 어려운 나 때문에 마음 고생을 했는지, 나는 어제의 네 마음은 알겠어도 오늘과 내일 네 마음이 갑자기 식을까봐 무서운데, 꽤 오래 서로 보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도 네 마음은 변치 않고 있을지 등등. 이러니 저러니 내 생각의 끝은 결국 너에게로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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