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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Oct 04. 2021

명상같은 영화 <패터슨> 추천

 요 며칠 <패터슨>이 보고 싶었는데, 책 <쓰는 기분>을 읽고 나서는 더 그랬다. 넷플릭스에 왓챠까지 끊어놨으면서, 여기 없는 영화를 개별구매하는 게 몇 번째냐고 스스로를 추궁하느라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나를 부른다는 것, 그건 내 영혼이 이 영화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었고, 보고싶은 마음은 갈수록 더 커져서 마침내 오늘 이 영화를 보았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보는 거였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른 영화들도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넷플릭스나 왓챠에 올라에 올라와 있는 건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뿐. 또 개별구매를 해야 하는 모양이다.





 <패터슨>은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 씨의 일주일을 그린 영화이다. 그는 시를 쓰는 버스 운전사로, 사랑하는 아내 로라와 잉글리쉬 불독 마빈과 함께 살고 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버스 운전을 시작하기 전, 폭포를 바라보며 아내가 싸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그리고 퇴근해서 지하에 있는 자기만의 방에서 틈틈히 시를 쓴다. 그가 버스 운전을 하며 태우는 승객들의 대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퇴근 후 개를 산책시키며 들른 바에서 시의 소재를 발견한다. 어느날, 로라와 외출한 사이 마빈이 시를 쓰던 '비밀 노트'를 모조리 찢어놓은 걸 보고 시름에 빠지는데, 바람처럼 다가온 일본인은 그에게 패터슨 시에 살았던 시인과 시에 대해 잔뜩 물어본 뒤, 공책 한 권을 선물해주며 '빈 페이지가 더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과 함께 총총 사라진다.





 

 <패터슨>은 잠이 오기로 유명한 영화였는데, 요즘 쉬고 또 쉬고 싶은 나에게 이런 영화가 절실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거나 잠에 빠져드는 것보다 더 쉼을 선사하는, 마치 명상같은 영화. <인 디 아일>도 좋았던 걸 보니, 나는 이런 영화가 잘 맞는 모양이다. 잠이 오기는 커녕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으면서 가끔 기쁨에 반짝 빛난다. 사람을 조금씩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이 영화에는 있다.





 패터슨의 일과는 규칙적이고, 반복된다. 6시 넘어서 아내와 함께 잠든 침대에서 눈을 뜨고, 신발을 신고 옆에 잘 개어놓은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아침을 먹고, 운행 시작 전 노트에 시를 적고, 불평 많지만 귀여운 관리인과 운행 전 잠깐 수다를 떨고, 점심 식사를 하면서 또 시를 쓰고, 퇴근하면서 옆으로 기울어져있는 우체통을 바로 세워놓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은 후에는 개를 산책시키고 바에서 맥주를 마신다.





 이토록 평범한 일상을 사는 그의 마음을 늘 사로잡고 있는 '시'가 바로 그를 평범한 것과는 거리있는 인물로 만든다. 그가 시를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이므로 그의 곁에는 시를 쓰는 소녀가, 패터슨 시에 살았던 시인을 좋아한 나머지 패터슨 시까지 여행을 온 일본인이 나타난다. 평범한 일상의 변주는 그가 시를 사랑한 나머지 그의 삶도 한 편의 시가 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에게는 매일이 새로울 수밖에 없다. 매일 새로운 시를 구상할 수 있는 사건, 인물, 소재들을 마주하고, 새로운 시를 쓰기 때문에. 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패터슨 시의 버스 운전기사를 업으로 삼고 있음에도, 그의 노트가 그와 함께 남아있지 않더라도, 그는 이미 시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는 시인이므로.






 그가 퇴근 후 매일 들르는 바에는 로미오가 있다. 여자친구에게 차인 후에도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달리는 그는, 사랑이 없다면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는다. <패터슨>은 우리의 삶에도 그런 사랑이 있냐고 묻는 영화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영화 안에는 체스에 심취된 바 주인,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에도 랩 연습을 하는 사람, 컨트리 음악을 하겠다고 몇 백 달러짜리 기타와 DVD 교본을 사는 아내 로라, 엄마와 동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시를 쓰는 소녀가 나온다.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이들은 매일 한 뼘씩 자신의 꿈에 가까워지고, 그래서 그들은 매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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