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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Oct 08. 2021

지금 내게 꼭 필요했던 영화 <그래비티>

 오늘은 연차를 쓰고 <그래비티>를 보러 다녀왔다. 이미 돈 주고 이용하고 있는 왓챠에서도 볼 수 있는 영화를, 그것도 줄거리까지 알고 있는 영화를 보러 굳이 돌비시네마관으로 향한 것은, 이 영화는 무조건 큰 스크린에서 봐야 한다는 말을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본 지금, 비 오고 앞날과 관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진하여 지쳐있던 나 자신을 이끌고 환경 좋은 극장을 택한 나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만약 집에 있는 작은 TV로 봤다면 내가 조금 미워질 뻔 했다.





 게다가 오늘이 좀 더 뜻깊은 것은, 처음으로 오리지널티켓, 이른바 '오티'라는 것을 받아보았기 때문이다. 내 첫 오티가 산다라 블록의 얼굴이 박힌 데다가 반짝이는, 그것도 내가 몹시 사랑하게 된 영화 <그래비티>의 것이라니. 오늘은 이것만으로도 큰 소득이 있었다. 집에 오면서 책갈피로 써보니 안성맞춤이다.





 <그래비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라이언 스톤 박사는 지구에서 딸을 잃은 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우주로 떠났다가 예상치 못했던 사고가 발생하여 모든 동료들을 잃은 채 홀로 표류하게 된다. 지구로 돌아갈 가능성이 모두 막혔다고 판단한 그가 통신을 시도하려다가 지구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아기 우는 소리, 자장가 불러주는 소리를 들으며 삶을 포기하려 할 때, 불현듯 죽은 줄만 알았던 동료 맷이 돌아온다. 그는 이 우주에서 떠있는 것이 물론 편하겠지만, 그러면 사는 것의 의미는 어디 있느냐고, 또 집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냐고 묻는다. 두려워하던 라이언은 울며, 죽은 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지구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래비티>에서 좋았던 장면을 뽑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특히 엔딩 장면은 내가 그동안 봤던 영화 중에서도 손 꼽히게 가슴에 와닿았다. 하필이면 그가 탄 소유즈는 바다로 착륙하고,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한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채 바닷물이 마구 안으로 들어오는 소유즈에서 그는 겨우 빠져나온다. 그가 입은 우주복을 입은 채로 바다를 빠져나갈 수 없으므로 그는 우주복을 벗어던지고―다시 한 번 취약해지고― 헤엄을 쳐서 육지에 다다라 땅에 엎드린 그는 행복하게 모래를 움켜쥔다. 오랫동안 무중력 상태에 있었던 그는 이제 걷는 법부터 다시 익혀야 한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일어서고, 마침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다. 





 극복하기 어려운 상실과 고통으로 입은 내상을 간직한 채 삶을 완전히 놓아버리지도 그렇다고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시기가, 또는 그런 삶이 있다. 우주에서 홀로 표류하기를 멈추지 않는 삶.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 선택임을, 어느 순간 우리는 삶을 계속 이어나갈 선택을 해야 함을 <그래비티>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주에서 살아남는 것, 심지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훨씬 어렵고 어쩌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일이기에, 라이어는 온 노력을 요하는 분명한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삶, 그러니까 또 다른 사랑과 기쁨, 만남과 상실과 고통의 가능성으로 기꺼이 걸어들어갈 것인지에 대하여.





 때로 우리는 라이언과 같은 상황에 맞닦뜨린다. 마음이 다 무너져내렸기 때문에, 다시 이전처럼 살아갈 용기를 낼 수가 없어. 집이 있는 지구로 나를 끌어당겨줄 중력을 잃어버려서 돌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겠어. 그러니 이제는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만들어줘야 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잃어버렸지만 지금도 너를 너무 많이 사랑하니까, 그 힘으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 라이언과 맷의 말이 정말 맞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 모험담을 이야기하며 웃거나, 아니면 불에 타죽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어떻게 되든 대단한 여정이 될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우리는 불에 타죽을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미지의 삶으로 복귀하는 데 딱 그만큼의 용기는 필요할 것이다.





 실은 내 삶을 위아래로 뒤집은 사람을 알게 된 뒤에,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두려움도 같이 커졌다. 이전에 알았던 사람들처럼 내 마음을 모두 찢어놓은 채 날 혼자 남겨두고 가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전혀 아니어서 나에게 상처만 주면 어떡하지, 지금의 그는 진심이겠지만 그게 깃털만큼 가볍고 변하기 쉬운 사랑이라면 나는 어떡하지. 그래서 그를 지켜보고 재고 판단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둘 사이에 이런 거리감과 시간이 필요한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어서 조급해하면서 또다시 두려워졌다. 상처만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삶을 온 힘으로 끌어안기 위해서는 그에 수반되는 모든 위험까지 기꺼이 떠안을 용기가 필요한 것을.





 코엑스 돌비시네마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훌륭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작년 1월 <기생충>을 이 관에서 본 후 처음 오는데, 역시 우주를 그려낸 영화는 큰 스크린과 좋은 음향설비를 갖춘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다. 다른 무엇보다 '적막'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적막을 몹시 사랑한다. 꼭 우주에, 바다에 내가 빠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서 이따금씩 잔뜩 긴장해야 했다. 광활한 우주에 홀로 남겨진 그의 마음이 꼭 내 것 같아서. 이 다음 똑같은 관에서 볼 영화는 바로 <듄>. 이 영화를 보려고 원작까지 사서 읽고 있는데, 꽤 기대가 된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 야속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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