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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Oct 19. 2021

속절없이 이끌린 경험이 있다면, 이 소설책을 추천

<아침의 첫 햇살>, 파비오 볼러 저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물건들을 구경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단지 내가 기분이 좋았다는 것과,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내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 <아침의 첫 햇살>, 파비오 볼러 저




 꼭 내 마음같은 소설책을 만났다. 바로, 이탈리아 남성작가가 쓴 책이지만 놀랍도록 여성의 심리를 잘 포착한 책인데, 한 여성이 쓴 일기 형식으로 전개된다.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주인공 엘라나가 남편과 소통이 되지 않아 불행한 일상을 보내던 찰나에 그에게 '눈길'을 주는 남성을 만나고, 그를 통해 엘레나는 처음으로 자기 안의 열정을 발견하고는, 그와 불륜을 벌이게 되는…. 그렇다. 이 책에 대한 편견을 갖기 쉽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 책은 불륜을 조장하는 삼류소설이 아니고, 여성을 위한 성장소설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또는 새롭게 태어나기 위하여― 한 남성을 기점으로 늘 내면에 자리하던 '그 여성'으로서 살기 위해 알을 깨부수는 여정을 그린 소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신이 어느 길목에 있던―작품 초반의 엘레나처럼 희망 없는 관계를 놓지 못하고 있건, '그'를 만나 세계가 뒤집혔건, 엘레나의 친구 까를라처럼 누군가와 결별 후 인생으로부터 긴 도피를 떠나 있건, 이 책은 당신이 현재 겪고 있는 혼란을 정확히 찝어줄 것이며, 갖고 있던 의문을 일부분 해소해줄 것이다. 끝없을 것 같은 당신 지금의 상태에 언제까지나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어떤 연인이 당신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든 외면하든 상처주었든지 그 모두는 당신을 찾으러 가는, 당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길목에서 필요하여 나타난 사람들이란 것을, 그러니까 결국에 당신 인생의 유일한 주인공은 오직 당신뿐이며, 당신 삶에 로맨스를 선사할 단 하나의 백마 탄 '누군가'도 당신밖에는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나도 인생의 다른 기점에 접어들면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사무쳤기 때문에, 그 감동을 새롭게 느끼고 싶다. 그래서, 책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내 마음 같았냐고? 나도 딱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데, 고작 '눈길' 가지고 이러는 것 웃기는 일인데, 남들이 말하면 내 착각이라고 웃어 넘길텐데 눈이 마주치면 시간이 멈추고 심장이 내려앉아. 몇 번의 눈맞춤과 짧은 대화만 오갔을 뿐인데 마치 너를 다 아는 것 같고, 내 영혼이 너에게 이끌리는 걸 막을 길이 없는 것 같아. 다만 엘레나의 경우와 차이가 있다면, 내 경우엔 성적인 이끌림이 아니고, 나는 유부녀도 아니며, 그도 내게 딱 한 가지를 바라면서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





 나는 엘레나가 남편 파올로에게 가지고 있던 그 본능같은 혐오와 죄책감이 뒤섞인 그 감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랫동안 홀로 노력하고 고군분투했으나, 지난한 기다림의 시간 동안 결국 그를 사랑하려는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기 되어 모든 걸 포기해버린 마음. 엘레나가 떠난 후에야 그가 깨달은 것처럼, 당시의 그는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으며 노력조차도 하지 않아서, 누군가와 깊은 애정을 나누는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했다. 나는 엘레나-파올로나 <우리는 사랑일까>의 영화 속 부부는 이미 파경을 맞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랑은, 익숙해지므로 대화가 필요없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매일 끊임없이 두 사람의 노력으로 새로 피어나야만 하는 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이상 소통하려는 의지도 노력도 없을 때, 두 사람은 오랜 기간 함께 했어도, 부부여도, 이미 이별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믿는다.





  이야기의 후반부 내용은 이렇다. 엘레나가 불륜을 벌이던 '그'와 육체적 관계 이상을 맺고 싶어하자, '그'는 관계를 끊어낸다. 그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선을 엘레나가 넘었기 때문이다. 절망한 엘레나는 '그' 덕분에 찾은 그 여자, 사랑과 열정으로 불타올랐던, 새롭게 마주한 그 여자를 모른 체 할 수 없게 되었다. 남편과 이혼하게 되고, 홀로 살며 엘레나는 소소한 일상의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자기 자신으로서 사는 즐거움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만, 그는 '영원한 사랑'도, 엘레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단 한 사람'도 아니다. 그는, 엘레나가 자기 자신으로서 두 발로 섰을 때 함께 인생을 걸을 수 있는 연인이다.

 




 나는 작품 초반부에 카를라가 '그'를 처음 만나 혼란에 빠진 엘레나에게 '단 한 번만이라도 네 느낌대로 행동해'보라고 조언해주는 부분이 좋았다. 꼭 내게 필요했던 그런 조언이었으며, 나도 엘레나와 같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삶이 어떤 삶이냐고 하면,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든지 의혹을 품는다든지 하는 걸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 삶, '뭐 하나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걸 완전히 분해해버릴 때까지는 멈추질 않'고, '느끼는 것보다는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걸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이다. 




 엘레나는 끝없이 왜 실수인 것, 의미없는 일이란 걸 이미 알면서 일을 저질러야 하는지 까를라에게, 또 자신에게 질문하다. 그는 마음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늘 그랬듯이 이미 자기 패를 가지고 있다. 이런 엘레나에게 까를라는 굉장히 중요하면서 결정적인 말들을 한다.


"실수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에게 뭘 가져다줄 수 있는지가 중요한 거라고. 널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걸 누가 알겠니? 엘레나, 그러니까, 살면서 한번은 부딪혀봐야 하는 거야. 아무리 의미 없는 일이라도 한번 부딪혀보는 거라고."


"한 번만이라도 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라는 거야. 네가 누구인지는 잠시 잊어버리고, 그러고 나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라고……."




 결국 이 소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고 불행하다고 느꼈던 여성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여정을 그린 책이다. 매일이 아니더라도 일상을 진솔하게 기록한 일기가 이 여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새삼 느낄 수 있었으며, 꼭 사랑과 열정, 관계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여행을 떠나는 우리 모두에게, 여성이든 남성이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인생 어딘가에서 있었던, 당신의 모든 신경과 주의, 영혼과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은 누군가에 대한 경험을 떠올리면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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