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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Oct 29. 2021

가로등 아래 단풍이 반짝반짝

2022년을 바라보는 마음

"실수할 수 있는 터전이 곧 성장할 수 있는 터전이라는 얘기?"
"맞아! 그래, 실수를 한다는 건 곧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할 테니까."

― <아침의 첫 햇살>, 파비오 볼로 저




 올해 4월에 시작한 달리기가 내 한 해를 지탱해주었다. 출근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주의를 미처 기울이지 못하는 단풍을, 저녁에 공원으로 향할 때마다, 또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보고 감탄하게 된다. 가로등 불빛을 받으면 단풍이 저렇게 빛나는구나, 불타는 듯이. 그 불이 내 마음에도 옮겨온 것만 같았다. 이렇게 아름답다니. 하루의 시름을 모두 잊을 수 있는 순간이다.




 이제는 공원 세 바퀴를 도는 데 30분이 채 안 걸린다. 30분을 꼭 넘길 때가 분명 있었는데. 언젠가 네 바퀴를 가뿐하게 뛰는 때가 올까? 




 2021년을 돌아보며 연말결산을 할 때가 다가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올해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엄청난 고민 끝에 시도한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2021년보다 더 건강하고, 더 단단해진 나를. 만약에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100일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연락이 오래 전 끊겼던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읽고 겪고 경험한 것을 브런치에 쓰지 않았더라면? 일기를 아침 저녁으로 쓰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나였겠지만,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스스로인 것으로 몹시 만족하는, 좀 더 나 자신과 가까워진 나. 내가 내 운명의 개척자라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2022년은 내게 어떤 선물 같은 한 해가 될까. 내다볼 수 없고, 그래서 더 설레지만 분명한 건 내 선택, 내 행동으로 2022년 12월의 나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는 점. 나는 어떤 나를 만나고 싶을까? 나는 그 힌트를 책 속에서 찾고 있다. 





 추워지는 날씨, 담요같은, 때로는 벽난로 같은 책 두 권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다. 하나는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 <아침의 첫 햇살>, 또 하나는 정혜윤 PD님의 신간 <슬픈 세상의 기쁜 말들>. 좋았던 구절들이 많아서 계속해서 펼쳐보고, 따로 옮겨적고 있는 책들이다. 나는 이 책들을 토대로 내가 살고 싶은 2022년을 그려본다.




 <아침의 첫 햇살>은 한 여인의 일기로 주로 전개된다. 시작 또한 그 여인의 일기로부터. 그리고 이 일기가 쓰였던 불꽃같은 순간들이 지난 후, 그 여인은 이렇게 쓴다.(이것이 이 책의 도입부이다.) 

"한때 나였던 이 여인을 나는 사랑한다."

 나 역시 나였던 여인, 늘 진실하고 나와 타인을 동시에 사랑하기 위하여 발버둥쳤던 그 여인을 사랑한다. 너무 사랑해서 때로는 몹시 괴롭고 힘든 시간들을 거쳐야 했을 만큼. 때로는 나 자신을, 또 내 주위 사람들을 향한 엄청난 분노와 증오를 품고 있어야 했을 만큼.




 이어서 그 여인은 이렇게 쓴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는 여자다. 그녀는 참아낼 줄 알았다. 나는 그녀의 많은 훌륭한 점들을 인정해주고 싶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용기와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의지와 자신의 선택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인정해주고 싶다."

 2022년, 나는 꼭 이러한 자세로 살고 싶다. 책 속의 여성을 비롯하여, 이렇듯 앞서 살았던 여성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 한 발 한 발 나아갈 때 묘하게 든든하다. 그래, 나도 이렇게 나아가면 그들의 면면을 나의 방식으로 닮게 되겠지, 하고.



 

 그리고 다음, 완독했으나 아직 감상을 남기지 못한 <슬픈 세상의 기쁜 말들>에도 2022년의 나를 그려볼 수 있는 멋진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새미는 많은 친구들과 더불어 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으로 올리버는 이야기를 끝맺으면서 한마디를 더한다. "이건 새미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안 어딘가에 시도 한두 편 들어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을 구속하고 있는 줄을 끊는다면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경이로운 일들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목줄을 물어뜯는 것은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목줄을 물어뜯어봐야만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도전적인 지혜를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목줄을 물어뜯었는지가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 <슬픈 세상의 기쁜 말들>, 정혜윤 저


 


 2022년의 나는 목줄을 물어뜯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 내 직장생활도, 그 밖의 내 삶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불안도가 높은 내게 이만큼 평탄하고 마음이 편안할 때가 또 없었으니까. 그러다보니, 이 안전지대를 벗어나기가 너무나 싫어졌다. 겨우 발버둥쳐서 스스로 얻어낸 이 평화, 이 안온함을 포기하기가 싫은 마음. 이 마음을 기꺼이 벗어던져야 한다. 나 또한 하나의 이야기가 되리라는 것이 내가 막 품으려하는 나의 북극성이다.




 내가 유종의 미를 반드시 거두리라 마음 다지고 있는 이 2021년도 두 달이 남았다. 이 두 달동안 어떤 기적같은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지. 12월 31일의 나는, 어쩌면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내가 변한 것보다 더 많이 변해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 좋겠다.) 2021년과 2022년 12월의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그것이 지금 품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망이다.




나는 시 속에서, 그리고 시적인 순간들을 만나면서 달라지고 싶다. 현실을 변신의 장소인 것처럼 살고 싶다. 특별한 이야기의 힘을 믿고 우리에게 마법 같은 힘이 있음을 믿고 세상에 기적이 존재함을 믿고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감히 믿으면서 살고 싶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믿어야 자신도 달라질 수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의 증거가 되고 싶다. "누가 그래? 내가 예전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 <슬픈 세상의 기쁜 말들>, 정혜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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