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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Oct 28. 2021

환기미술관 기획전을 다녀와서

미술이 위로가 되는 순간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 김환기 화백의 일기 (1970. 1. 27)




 2년쯤 전 지인들과 환기미술관을 다녀왔던 터라, 이번에 가면 새로운 게 보일까, 많이 다를까 고민을 한참 했다. 그런데 근래에 다녀온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나, 리움미술관 등에서 본 많은 작품들 중에서 유난히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작품은 모두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만을 모조리 모아놓은 전시에 가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공간도 음악도 모두 좋았던, 완벽하게 내게 필요했던 전시였다. 석파정도 함께 들를 수 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휴관이라 가지는 못했지만 단풍이 뒤덮은 시점은 아니었으니까, 다음에 가면 된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엄마가 연차를 내고 어디 다녀왔냐고 해서, 주말에는 예약이 도무지 어려운 미술관을 평일에 겨우 예약해서 보러 다녀왔다고 답했다. 미술은 조금도 모르는 내가 정기적으로 미술관을 찾는 이유는, 그림이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온갖 감각이 예민한 내게 고요한 미술은 안식처와 같다. 일상의 크고 작은 문제들, 실은 그렇게까지 마음 쓸 일이 아닌 것들에 완전히 몸과 마음, 때로는 내 영혼까지 점령당해서 괴로울 때 나를 슬며시 흔들어 깨우는 게 미술이다. 그렇게 마음 쓸 게 아니야, 진짜 중요한 건 저 너머에, 네가 잊고 있는, 네 자신인 너의 존재 안에 있다고 속삭이면서.





 작가와 작품마다, 또 내가 처한 상황과 삶의 시기에 따라 감상하는 것도 달라진다. 어떤 작품들은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을까, 그는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찬찬히 살펴보게 되고, 또 다른 작품들은 그 작가가 한 땀 한 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노고와 정성, 습작과정을 보며 예술과 삶에 대하여 생각하고, 나의 일상을 돌이켜보게 되고, 또 어떤 작품들은 그저 말과 생각을 잃고 멍하니 그 안을 유영하게 된다.




 이따금씩 작품을 통해서 내 마음상태가 딱 이런 것이었지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마치 심장이 쪼개진 채 피를 흘리는 듯한 작품이었다. 물론, 오늘의 내 눈에만 그렇게 비칠 수도 있다. 맞아, 나 실은 이만큼 괴로워, 이만큼 마음이 무너져내렸다는 걸 인정하면서 작품을 보는데 그게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혹시 작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이런 상태를 거쳐갔을까 생각하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은 air and sound. 푸르른 점들이 작품 안에서 피어오르고 흐르고 몰려오고… 꼭 내 마음을 다 물들일 것처럼, 내 마음 안에서 울리고 나를 위로하고…. 이 모든 것이 흘러갈 거라고, 이 모든 게 그렇게 마음 쓸 일이 아니라고 그곳에서 가만히, 마치 내 마음을 다 아는 듯이…





 역시 무엇이든, 할까 말까 고민이 된다면 질러보는 게 맞다. 이제 2021년을 마무리하고 내년을 잘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막 들어가려는 참인데, 이번 해를 만든 것은 모두 나의 보잘 것 없고 조금 쪽팔리기도 한 크고 작은 시도들이었다. 내년에도 그런 시도들을 많이 해보기를. 다칠까봐 덜 염려하고, 더 용감해지고, 무엇보다 더 나다워지면서. 특히 내년에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향유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든지 간에. 마침 최근에 뉴스레터(James Clear)에서 본 다음의 글에 크게 공감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The more you create, the more powerful you become.
The more you consume, the more powerful others become.
 
by James Cl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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