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은 Nov 10. 2021

영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세계를 엿본다는 것

오디오 매거진 <조용한 생활> 6울호 中  류성희 미술감독님 인터뷰

류성희 미술감독님을 처음 알게 된 건 예능 <방구성 1열> 덕분이었다.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방식이나 솔직하면서도 굉장히 재치있는 입담, 무엇보다 감독님의 능력치(!), 그리고 일에 대한 애정에 반했었다. 그런 감독님의 인터뷰가 <조용한 생활>에 올라왔는데, 정말이지 깜짝 선물같이 느껴졌다. 감독님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만 있어도 그의 말투와 말하는 방식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기억에서 휘발되기 전에 마음에 특히 와닿았던 구절 몇 개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1. 내가 가득 차있어야 남이 만들어낸 세계를 함께 그려낼 수 있다

 영화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은 곧 타인(주로 감독)이 만들어낸 세계를 그려낸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가득 차있어야 하고, 그래서 나를 채우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혜리 기자님은 조금 놀라셨던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 그러니까 나를 비워야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고. 이에 감독님은, 내가 가득 차있어야 비울 수도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학부 때 이미 느꼈지만 내가 영영 소진되지 않게 나를 계속 채워넣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고, 함께 사는 딸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을 해낼 수 있고, 성인이 된 지 벌써 꽤 되었지만, 그래도 내 앞가림은 할 수 있는 성인으로서 세상 안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어디로 도망치지 않고, 내 몫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2. 외톨이들의 콜라보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영화의 본질

 이 문구는 감독님 인터뷰의 부제이다. 정확하게 이 문장으로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꼭 이런 내용의 말을 하셨다.

 굉장히 재밌었던 것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개성이 굉장히 강한 아싸들이라는 말씀이었다. 정말 그렇겠구나, 사교적이거나 내향적인 것과 별개고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사람들이겠구나, 싶었고, 그러다보면 소통이나 협업이 정말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무직이라고 해서 개성이 없는 인물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는 게 또 재미있는 포인트다. 우리는 예술을 하겠다고 모인 것도 아닌데 이런 개성들이 필요한 건지 의문일 정도로. (평범한 사람은 왜 이토록 찾기 어려운가. 왜 모두의 고유한 개성이 뾰족하게 주위 사람들을 찌르는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두 가지로 놀랐는데, 첫째는 이렇게 제각기 다양한 사람들을 한 팀에 몰아넣고 일하라고 하다니, 그리고 둘째로는, 이렇게 많은 직장인이 일하기 싫어하고 사직서를 가슴 안에 간직하고 다니는데, 세상이 참 잘도 돌아가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와 성향이 너무 다른 사람들 때문에 괴로워하던 지금의 내게,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이 되는 것, 각자의 개성이 결국 완전한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이라는 감독님 인터뷰가 적절하게 와닿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봐주는 내 옆 자리의 동료들이 있어 감사함을 내가 왜 그동안 잊고 살았던가 싶고. 그동안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에 둘러싸여있는 고통만 토로할 줄 알았지, 이로써 생겨나는 신기한 화학작용에는 무지했음을 반성했다.





 3. 그의 인생 여정

 감독님은 내 생각보다 미술의 세계에 늦게 진입했다. 그리고 나라면 절대 못했을 일, 엄마아빠에게 거짓말을 하고 영화미술을 공부하러 유학가고, 또 국내보다 좋은 환경에서 잘 일하고 있음에도, 본인이 원하는 미래를 그려볼 수가 없으므로 과감하게, 아무것도 없이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서 일을 시작하는 것 등등, 그의 인생 여정을 들으며 나는 내내 감탄했다. 




 요즘 느끼는 나는, 무조건 이렇게 저렇게 하면 이 목적지에 도달한다, 또는 이런 성과를 내 손에 넣을 수 있다, 하는 게 확실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돌다리를 열 번쯤 두드린 후에야 건너는 나같은 사람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쫓아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이런 올곧은 커리어라니…. 멋있었다. 나도 커리어를 두고 모험을 하긴 어렵지만, 어쩌면 내 직장 바깥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두고는 어쩌면….





4. Five-Minute Journal

 요즘 감독님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는, Five-Minute Journal을 며칠 전부터 나도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깜빡했다. 지금 쓰는 김에 오늘 감사한 점을 쓰자면, 휴가 마치고 리프레쉬 되어 돌아온 것, 돌아온 내게 일거리가 있는 것, 나를 (말뿐이어더라도) 기다려준 직장동료들이 있는 것 등등. 

 인생이 무엇일까, 참 내 마음같지 않아서 고민이 비눗방울마냥 퐁퐁 솟아나는 하루하루여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쨌든 순식간에 흘러가버릴 현재를 최대한 감사하며 보내는 것밖에 또 있겠는가 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고민중이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