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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8. 2020

나를 다독여주는 100가지 이야기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류시화 저

 첫 직장생활을 하면서 너무 힘들 때, 류시화 시인의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설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에서 전하는 메시지처럼, 우리는 삶이라는 경이로운 체험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현재의 과제에 빠져 고통스러워한다. 그럴 때 이런 책이 꼭 필요하다. 이 소중한 날들을 그냥 넘겨버리지 말자고 나를 다독여주는 책.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100개의 인도 우화집이다. 이런 책은 겨울날 곶감을 하나둘씩 꺼내먹듯이 아껴 먹어야하는데, 성격 급하고 이야기를 워낙 좋아하는 나는 순식간에 읽어치우고 이렇게 후회를 한다. 

 우화 하나하나가 좋아서 하나씩 음미하고, 곱씹고, 또 내 삶에 적용해보는 과정이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내가 이야기를 원체 좋아하기는 하지만 좀 성급하게 읽어버렸던 것은 이 책을 처음부터 너무 사고 싶었으나  이미 사놓고 안 읽은 책들을 생각하며 꾹 참아왔기 때문이다.  

 이 책이 더욱 좋았던 점은 100개의 우화가 모두 새로웠다는 것. 

 요즘 나의 고민은 조급한 것이다. 빨리 나의 자리를 찾고 싶고, 더 나은 내가 저기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조금 더 열심히 하면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는 것.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지금 나의 계절을 통과하고 있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연필이 주는 다섯 번째 교훈은 이것이다. 그대가 지나가는 곳에 그대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대의 생각, 행동은 필연적인 자국을 남긴다. 그 자국들이 그대의 삶이라는 작품을 이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 이 책이 나에게 던져준 새로운 질문이 있다.

 "나는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가?"

 내 삶의 의제는 언제나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머릿속으로는.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이 현실에서는, 더이상 조금도 더 상처받기 싫고 손해보기 싫어서(왜 나는 항상 이렇게 손해보는 것 같은지! 사람을 못 미워하고 속으로 쉽게 정을 떼어 주기 때문에 나는 쉽게 약자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고 혼자 느낀다.) 안전한 길로만 가려는 내가 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나는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지. 사실 답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나는 그저 온전히 나 자신이고자 한다." 오로지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면 뭐든지 좋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더더욱 나다워진다. 

 고등학교 때 엄청 좋아하고 동경했던 선생님이 있다. 일을 무섭게 잘했고, 영리하고 열정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직장을 다녀보니 사람보다 일을 우선하는 사람이 그렇게 미워보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모자람을 가리기 위해서 출세를 목표로 아래 사람들을 갈아가면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대학교 1학년, 정말 좋아했던 교수님들이 몇 있다. 한 분은 글쓰기 수업 때 만난 교수님으로, 나를 정말 예뻐하셨는데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애정이 아름다운 분이었다. 다른 한 분은 전공 수업 때 만난 교수님이었고, 논문 쓰는 게 너무 즐거워서 밤을 새고 싶었는데 다음날을 위해서 억지로 잠이 들었다고 말할만큼 학문에 대한 애정이 깊은 분이었다. 또 다른 한 분은 내가 잊기 힘든 내 인생의 명대사를 날리신 분이었는데, 그분 역시 가르침에 대한 열정,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눈물겨운 분이었다.



 나는 자기만의 꿈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 너무 좋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길.  

 힌디어에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증명하면 된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나는 자꾸 과거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싶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 혹은 이런 문제를 겪고 있어서 그런 행동을 했노라고. 내가 원래 그것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달라고.

아니면, 자꾸 머릿속에서 변론을 펼친다. 누군지는 몰라도 나를 공격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사람들에게. 인터넷 세상이 이렇게 유해하다. 조금만 틈을 보이면 추락시키려고 하는 마음의 화가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이고, 그러면 나는 그렇게 꼼꼼하고 예리한 방식으로 내 삶을 검열하게 된다.

 타인이 나를 싫어할 것 같을 때, 나는 앞장서서 나를 혼내고 더 미워하곤 했다. 그게 내가 나를 방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매일 스스로를 혼내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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