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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Nov 21. 2021

20년만에 재개봉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고

흔들리는 청춘에게 바치고 싶은 영화

"어디로 갈 건데?"

"가면서 생각하지 뭐.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함께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中



 2001년 개봉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20년 만에 재개봉을 했다. 당연히 아무 극장에서나,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마저도 자꾸 시간표가 줄어들고 있어 마음이 조급했다.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영화라서 이건 꼭 봐야 해, 느낌으로 종로에 있는 인디스페이스 영화관에 굳이, 이 영화를 위해 처음으로 가보았다. 정시상영이라 좋았고, 생각보다 관이 굉장히 좋아서 놀랐고, 딱 내 다리에 맞는 길이의 기모바지를 입고 간 탓에 두 시간 가량 발목이 썰렁해서 오들오들 떨었다. 극장을 나오면서 관객들이 나누는 말소리를 들어보니 나만 추웠던 것은 아닌 것 같다.





 20년만에 다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난 이번에 처음으로 보았다. 어떤 영화일지 정말 궁금했는데, 기대보다 더 좋은 영화였다. 20년 전의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배우의 앳된 모습, 그리고 서울 풍경을 보는 것, 그리고 이 영화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영화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마음이 뭉클해지는 데가 있었다. 특히 20년 전에도 여전한 배두나 배우의 반짝반짝한 눈망울, 통통 튀는 천진함 속에서도 갈등과 반항적인 기질이 고스란히 보이는 연기가 좋았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에서 여자상고를 졸업하고 막 사회로 나온 친구들의 모습을 스케치한 영화이다. 천진하고 꿈 많은 태희(배두나 역), 증권사에 입사해서 고군분투하는 혜주(이요원 역), 미술에 뜻도 재능도 있지만 돈도,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직장도 없는 지영(옥지영 역), 악세사리 등을 직접 만들어 파는 쌍둥이 비류와 온조. 어쩐지 비류와 온조는 큰 걱정이 없는 듯 늘 명랑하지만, 각자의 고뇌와 고통이 있다. 얼마 전까지 바로 옆을 지키고 섰던 친구들도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할 만큼의.





 매일 얼굴을 보던 막역한 사이에서,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난 청춘들의 우정에서 미묘한 단층들이 생겨난다. 그럼에도 곁을 지켜주는 우정의 소중함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오아시스가 사막을 아름답게 만들듯, 우정도 꼭 그렇게 우리 삶을. 딱 스무살 무렵에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는 갈등들, 예컨대, 왜 먼저 연락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지, 진지하게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어깃장을 놓는 친구라거나, 분명하게 드러나는 가치관의 차이점들―너는 왜 그러고 사니, 내가 사는 게 뭐가 어때서!―, 더 나이가 든다면 그래, 넌 그래라, 하고 넘어갈 수 있을 법한 것도 이때는 갈등의 씨앗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아직 뿌리의 일부가 한데 엮어있으므로. 






 영화를 보기 전에는 <고양이를 부탁해>가 대표적인 여성 영화로 꼽힌다고 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그저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고 조금씩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 그런 내용이 전부라면, 그 친구들이 모두 여자라고 해서 여성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렇게 몹시 궁금하던 <고양이를 부탁해>는 온전히 그 시대의 여성들을 주목하여 담아낸 영화였다. 그래서 나는 영화에서 잠깐씩 얼굴을 비춘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훨씬 성숙하고 차분한 성격이지만, 어쩐지 홀로 깊은 혼돈을 품고 있는 듯한 혜주의 언니, 전자렌지 속 데워지는 약을 한참 바라보고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있는 태희의 엄마. 그들은 그들의 삶에서 어떤 기로에 서 있는 걸까, 그들을 존재의 벼랑 끝에 세워 그런 눈빛을 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모든 것이었을 테다. 삶, 그 자체.





 내가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 막 사회로 나온 여성들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폭력, 그리고 그 폭력에 깎이거나 저항하거나, 멀리 떠나는 스무살 여성들의 모습이다. 가정 안에서, 사회에서, 현실 앞에서, 도 서로 간에 이리저리 치여서 아프지만, 그래서 더더욱 서로의 곁을 꼭 지키는 사랑스러운 이들.



 


 나는 영화 속 친구들의 나이보다 열 살 가까이 많지만, 여전히 나나 내 친구들이나 갈피를 못 잡겠고, 한 치 앞을 모르겠고, 나이는 먹었어도 내게 펼쳐지는 일들은 모두 처음 겪는 일들이니 내 미성숙하고 서툰 모습만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건 삶의 어느 기점에 이르더라도 모두 똑같을 것이다. 매번 새롭게 아프고 버겁겠지.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렇게 흔들리던 그 시절이 눈부시다. 그걸 이제야 알겠다. 물론, 지금의 나도. 그리고 조금씩 더 나이 들 내 모습도. 존재 자체로 빛나는 나 스스로를 굳게 믿어줄 때가 됐다. 내겐 그 믿음뿐이 남은 게 없으니까. 그리고 그 믿음이 자랄 만큼 지금껏 잘 버텨왔으니까.





 혜주의 말마따나 함께 사는 일은 녹록치 않다. 그래도 나는 그 힘든 일을 해내고 싶다. 우리가 같이 있는다고 더 힘이 세지지도 단단해지지도 않겠지만, 아무래도 난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하는 게 더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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