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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Nov 15. 2021

영화 <제인 에어>를 보고

“Sometimes I have the strangest feeling about you. Especially when you are near me as you are now. It feels as though I had a string tied here under my left rib where my heart is, tightly knotted to you in a similar fashion. And when you go to Ireland, with all that distance between us, I am afraid that this cord will be snapped, and I shall...”




 올해 집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바로 이런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음악과 영상, 연기, 대사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제인과 로체스터의 대화 장면이 좋았는데, 그 대화의 깊은 정도와, 서로 닮은 두 영혼이 서로에게 어떻게 이끌리고 가까워지는지를 이렇게 잘 보여주는 영화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왜 이 영화를 이제야 만났는지 한탄스러운 와중에, 요즘 이런 시대극에 온통 매혹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 작품으로는 무엇을 볼지 고민하고 있다.





 부끄럽게도 나는 <제인 에어>를 책으로 읽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늘 책을 쥐고 살았는데 도대체 무슨 책들을 읽으며 지냈는지. 영화 <제인 에어>는 원작을 굉장히 잘 살려서 만든 영화이므로, 나오는 대사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날아와 꽂혔는데, 당연하게도 원작에 있는 문장이라는 걸 알고는 원작이 더 읽고 싶어졌다. 그 당시 소설로서는, 실은 현재 내 기준으로서도 놀라울 만큼 진보적인 작품이었다. 틈만 나면 창문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제인의 모습이, 그가 겉보기에 조용한 외면과 달리 얼마나 많은 꿈과 욕망을 지녔는지를 보여준다. 온갖 제약에 묶여서 그 너머로 가지 못하는 그는 얼마나 간절하고 답답한 마음이었을까. 로체스터를 볼 때 어떤 애정과 부러움, 질투와 존경이 뒤섞인 심정이 되었을지 궁금한 한편으로 짐작이 되어서 안쓰러웠다.





“It agitates me that the skyline there is forever our limit, I long for the power of unlimited vision...If I could behold all I imagine.”





 실은 괴롭히는 사촌에게 달려들어서 마구 주먹을 휘두르던 어린 시절의 모습에서부터 나는 제인과 사랑에 빠졌다. 상대가 누구든 굴하지 않고 할 말을 다 쏟아내는 태도, 꾸밈없는 솔직함과 그 말의 녹아있는 그의 교양, 지식과 깊은 생각들, 곧은 자세와 눈빛 등. 그런 깨끗한 영혼에게 닮은 듯 다른 로체스터가 자석처럼 이끌린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오만하고,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하며 무례한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책을 읽는다면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제인 에어에게 턱없이 모자란 상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적당히 조건들이 걸맞는 사람들이 적당히 호감을 가지게 되는 이야기보다, 서로 닮은 두 영혼이 이를 알아보고 뿌리칠 수 없는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더 좋다.





 제인 에어를 맡은 배우의 잔잔하지만 그 안에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눈빛과 특히 울 때의 연기가 너무 좋았는데,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에 나왔다는 걸 나중에야 알고는 깜짝 놀랐다. 내게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서. 물론, 영화 <제인 에어>에서의 그가 더 좋았다. 



 

 좋은 작품을 보고 난 후에는 늘 그렇지만, 꼭 이런 작품을 열심히 찾고 있다. 지금의 이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서, 당분간 나는 현대로 넘어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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