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하지만 겨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는
내 마음은 벌써 오월의 태양이 작열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를 보러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간 덕수궁관에서 본 전시회 중 가장 좋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특별전에서 가지고 온 작품도 꽤 있어서 반가웠다.
내게 화가 박수근은 그저 천재였다. 이해할 수 없지만 마음이 이끌리고마는 화법을 보고 있자면, 이 사람은 아무래도 타고난 화가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가 열한 살 때 밀레의 그림을 처음 보고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꿈꿨으며, 무수히 많은 습작을 그린 매우 성실한 화가였고, 어려운 시절 속에서 그림만을 붙들고도 살아간 사람이란 걸 이번 전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히 그가 더 좋아졌다.
그렇지만 예술가가, 모든 예술가들이 대구, 부산, 제주 등지에서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또는 독한 술로라도 정신을 흐려 놓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1˙4 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 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나, 생각하기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은 생각을 단념할 수는 없었다.
― 박완서, 「후기」, 『나목』, 1976
현재 국민화가라고 불리는 그의 그림이 인정받기까지는 오래 걸렸다고 한다. 주로 화가의 작품을 미국인이 많이 사갔으므로 서거 10주년 기념으로 전시회를 열려고 했을 때, 한국에 남아있는 작품도 몇 없었다고. 나는 아직도 우리가 채 파악하지 못했으나 지구 이곳 저곳에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감상하는 화가의 작품이 꽤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왜 그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마음이 울리는지 알게 되었다. 풀이 무성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여름의 나무보다 고독한 겨울을 가만히 견디면서 봄을 기다리는 나무를 그렸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여인들, 아기를 업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 등을 많이 그린 화가의, 소리내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리는 대상의 고단함을 헤아리고 있는 섬세함이 느껴졌다. 아마 그는 그리는 대상 속에서 그 자신을 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처지와 맞물려 비관에 빠지지도 않았다는 것이 인상 깊다. 언제까지나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었던 것이다.
내겐 신기하고 존경스럽기만 하다. 겨울 나무가 감당하고 있을 추위와 어려움의 무게를 가늠할 만큼 여린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그 감수성으로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희망을 버리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그리는 모든 대상―존경했던 화가 밀레가 주로 그렸던 노동하는 여인들―을 그릴 때 각자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존중과 애정하는 마음으로 그렸다는 것이. 화가가 그린 아이들은 경쾌할 수는 있어도 작은 아이처럼 의젓하다. 그가 그린 소도 어쩐지 사랑스러운 삶의 애환을 온 몸으로 느끼는 듯하다. 그가 그린 모란과 과일은 영혼이 깃들어있다.
나는 박수근의 모란, 그리고 정물화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더 많은 정물화를 그렸다면 좋았을텐데.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는 필시 그의 마음을 닮은 대상을 선택하며, 그가 그린 그림에는 영혼이 일부 스며들 수밖에 없음을 다시 느꼈다.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그림, 보고 있자면 나도 자연히 그려진 대상에게 마음이 이끌리는. 초겨울이 기웃거리는 늦은 가을에 보기 알맞은 전시였다. 덕수궁관 창 밖으로 노란 은행잎이 여전히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