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 Imagination and Reality> 전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하는 <초현실주의 거장들>을 몇 주 전 다녀왔기에, 내가 초현실주의 작품을 꽤 좋아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내 꿈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꿈 속을 헤매다가 마주친 것 같은 사막의 이미지, 바늘로 그린 것 같은 또렷하면서도 섬세한 윤곽선 때문에 나는 하염없이 그림을 응시하게 되고, 그럴수록 그림은 내게서 멀어지는 듯 나를 빨아들이는 듯 아득해진다. <초현실주의 거장들>에 이어서 보니 더욱 좋았던 <살바도르 달리> 전시회는 살바도르 달리 재단과 협업헤서 기획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초현실주의 거장들>에 비해 동선이며 곳곳에 설치된 영상물, 월트 디즈니와 협업해 만들었다는 애니메이션 <Destino> 등 매우 관객들에게 친절했으며, 볼거리도 알차게 풍성했다. 놓치기에는 정말 아쉬운, 추천할 수밖에 없는 전시였다.
늘 그렇듯 오만해보일 정도로 자신감 넘치고, 캔버스 너머로 계속해서 뻗어나가는 인물, 꿈의 세계를 재현하기에 가장 적합했던 인물로서 그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에 대해서 새로운 정보를 알수록 신기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이 있는 모든 잠재력을 발휘하여, 가능한 멀리까지― 한계를 넘어서까지 나아가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각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우리 속에 또 어떤 모습이 숨겨져있는지 발현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달리는 밀레의 <만종>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데, 나는 얼마 전 다녀온,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전에서 전시하고 있는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 자연히 생각났다. 밀레를 사랑한 화가가 물론 얼마나 많았겠냐만은, 한 화가는 기묘한 집착과 불안에 휩싸이고 한 화가는 화가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다니. 그것도 밀레의 <만종>을 너무도 다른 그림으로 계속해서 재현했다는 게 흥미로웠다.
개중 가장 인상깊지 않았던 코너인 삽화 중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삽화가 가장 좋았다. 몇 백년 후에 달리의 삽화로 새 옷을 입게 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야기와 그 작가도, 늘 그랬듯 고유한 자기만의 기법을 지키면서도 절묘하게 앨리스와 맞아떨어지는 마법같은 이미지를 창조해낸 달리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실은 달리가 삽화를 그려줄 만큼의 작품을 남긴 앨리스의 작가가 부러웠다.
마지막 영상물, <달리의 꿈>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물론 마지막 방에 들어서기 전까지도 만족스러운 전시이긴 했으나, 단연코 이번 전시의 꽃이자 백미였다. 달리가 22시간 살고 싶어했던 꿈의 세계, 그의 생애를 통틀어 그림으로 재현하려고 내내 애썼던 그의 꿈 속 세상을 '체험'할 수 있다. 이 영상물은 꼭 처음부터 끝까지, 웬만해서는 최대한 적은 인원과 함께 감상해야 한다. 사막이 내 발 밑으로 흐르고, 줄넘기 하는 소녀와 다리가 기다란 코끼리를 스쳐지나가면서 이런 꿈이라면 22시간 머무르고 싶을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가 '달리의 죽음은 믿지 않는다'고 했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죽지 않았다. 방금 나 또한 그의 꿈 속을 다녀오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