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올 사랑>, 정혜윤 저
나는 처음에 당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파악해보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는 숨은 질문이 있다. 당신에게는 끝까지 함께할 사람이 있는가? 끝까지 헌신할 만한 어떤 것이 있는가?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게 있는가? 상황과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을 관계가 있는가?
― <앞으로 올 사랑>, 정혜윤 저
<슬픈 세상의 기쁜 말들>을 읽은 나는 이에 탄력을 받고 <앞으로 올 사랑>까지 읽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랑에 한참 관심도 많거니와, 이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될지, 그 속에서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정혜윤 PD님의 책을 읽다보면 마음이 아리다. 세계 곳곳에, 사람, 그리고 말할 수 없어서 더 애틋한 생명 들이 지닌 사연에 마음 쓸 일이 많다. 모르면 마음이 편한 속사정들을 알게 된 이상 더는 모른 체 할 수가 없다. 깊이 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사랑하게 되면 행동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자꾸 불편해진다. 그래도 알아야 한다. 비통한 사건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피곤하지만, 그 사연을 지닌 생명들을 사랑하고 지키고 싶으니까. 그 사랑이 나를 살게 하고, 사는 것은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앞으로 올 사랑>은 고전 <데카메론>과 같은 형식을 따른다. 역경을 거쳐 이루어지는 사랑 이야기와 같은 10개의 사랑과 관련된 테마로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환경과 기후 위기, 생명 존엄에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중에는 보르헤스가 각색한, 거울에서 튀어나와 언젠가 우리를 공격할지 모르는 물고기들에 대한 이야기, 코로나19를 통해 어쩐지 더욱 멀어진 박쥐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최근에 내가 막 완독한 <진리의 발견>에도 나왔던 레이첼 카슨에 관련된 이야기 등이 있다. 모두 매우 흥미로우면서 내 삶의 시야를 확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에 정혜윤 PD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은 삶의 재발명'이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자아를 확장하고 싶어졌다. 내 안위와 나만의 꿈, 타인과 분리된 나의 미래를 그리는 게 조금 재미없어졌다. 나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몸 담은 이 소중한 세계를, 나와 더불어 살고 있는 현 세대와 앞으로 올 미래 세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다시금 배웠다고 할까. 아마도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를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멋있게 빛나는지, 그들이 생명에 대해 품은 지극한 사랑으로 자신의 삶 또한 사랑으로 물들이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다. 정혜윤 PD님이 한 보따리 풀어놓은 이 소중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내가 닮고 싶은 그들은 모두 척박한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공통적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다. 지금과는 다른 미래에 대한, 더 나은 삶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희망, 그리고 기꺼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인류에 대한 희망. 현실을 직시하고 바꾸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면서도 별에서 눈을 뗴지 않는 것, 그건 정말 귀한 자질이다. 아주 담대한 마음과 용기를 지닌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어졌다. 바로 이 책 덕분에.
우리가 익히 아는 바 사랑은 손을 뻗는 것이고 팔을 벌려 안는 것이고 몸이 다가가는 것이다. 사랑은 며사가 아니라 동사다. 사랑은 실천이고 행동이고 창조다.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것은 곧 『침묵의 봄』을 쓰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의 생명을 구했다. 그녀는 일생에 걸쳐 자신의 사랑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 <앞으로 올 사랑>, 정혜윤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