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날이 참 좋았다. 파란 하늘 아래 푸릇푸릇한 잎사귀 사이를 아무리 걸어도 부족하다. 더 많이 이 아름다운 계절을 만끽하고 싶다. 당장 다음달로 넘어가면 햇빛이 너무 강해서 원하는 만큼 산책하는 것도 어려워질 것 같다. 지금만큼 뛰고 걷기 좋은 계절이 있을까? 이미 3월 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지난 한 달을 통으로 날려버렸다. 이제 한 달이 훌쩍 지났건만, 아직도 기력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다. 확진 이전의 몸 상태의 반의 반에도 못 미치지만, 일상 생활이 몸에 큰 무리가 안 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건강하다면 모두 가진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은 거라는 말을 마음 깊이 실감했다. 건강하다면 더 바랄 것도 없다는 마음도 어느 정도 진심이다.
오미크론이 유행한 이후부터는, 그리고 이제는 피해갈 수 없을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느낌이라, 가벼운 감기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했다. 천만의 말씀. 아직도 머리는 안개 낀 것 같고 내 정신이 아니다. 몸이 안 좋으니 마음도 안 좋을 수밖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손 끝까지 조금의 힘도 없어서 서있는 것도 힘들었고, 걷다가도 언제든 바닥에 엎드리고 싶었으며, 계단을 내려갈 때는 차라리 멍석을 말고 굴러갈 수 있더라면 싶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뚝이처럼 몸을 일으키고, 자거나 몸이 정말 아플 때 외에는 집에 누워있는 법이 없던 나였는데. 휴일에 가만히 집에만 있는 사람을 이해 못했는데, 이렇게라도 내 이해의 폭이 한 뼘 넓어졌다니 다행이다. 또, 왜 어르신들이 그렇게 천천히 걷는지 이제야 알았다. 그것도 겨우 움직이는 것이다. 정말 안간힘을 써서, 최대한 빠르게.
건강을 되찾으려고 최선을 다해 먹고 있다. 마침 친구와 간 카페에서 영양제 한 통을 주기에 얼른 챙겨서 아침 저녁으로 두 알씩 먹고 있고―내 건강이 평소와 같았더라면 친구에게 주는 건데, 아직까지 이게 너무 마음에 걸린다. 언젠가 꼭 영양제 한 통을 사줄 거야―, 얼마 전에는 통영에서 바다장어를 시켜다가 혼자 구워먹었다. 엄마는 염소 고기를 주문해서 전골이며 수육을 해주었고…. 참 이상한 건, 아프기 전에는 생전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소고기가 그렇게 먹고 싶다. 내 몸이 필요로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기는 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때 아니고서는 혼자서 도통 찾는 법이 없었는데 요즘은 스테이크 맛집을 검색하는 게 일이다.
어제는 어린이날이자 환상적인 5월의 하루를 맞이하여 석파정에 다녀왔다. 꽃이 어느 정도 시들어서 가장 예쁜 때는 아니었지만, 늘 계단을 올라 짠, 석파정을 맞이하면 꼭 이 세상이 아닌 곳에 온 듯한 황홀경에 잠시 멈추게 되는데, 그때의 그 느낌이 좋다. 그 크고 가파른 절벽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것도 좋고, 한옥 앞에서 눈 앞의 경치를 바라보는 것도. 게다가 지금 석파정 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이 전시가 영 좋다. 올해 가본 전시회 중 제일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김환기, 정성화, 박서보 화가의 못 보았던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외에 특히 인상깊었던 건 최영림 화가. 그 강렬한 색감이 마음에 마구 날아와 꽂혔다. 이번 전시는 수집가의 문장이 함께 있어 더욱 빛났는데, 꼭 많은 사람들이 함께 봤으면 좋겠다.
어제는 어딜 가도 그랬겠지만 경복궁도 그렇고 사람이 정말 많았던지라, 웨이팅도 보통이 아니었다. 아침도 잘 먹어서 스타벅스에서 라자냐랑 견과류만 먹었는데, 신기하게 먹고 나니 내가 배가 고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먹기 전보다 더 배고파지는 현상인데, 하여간 이미 온 기력을 다 쓴 이후라 얼른 집에 들어와서 영화 <쓰리 빌보드>를 봤다. 왜 분류가 코미디로 되어 있을까. 화창한 날에, 물론 너무 좋았지만 이렇게 묵직한 작품을 마음 한구석이 어쩔 수 없이 가라앉았다. 강간 후 살해당한 딸의 범인을 찾고자 용의주도하게 움직이는 어머니(프란시스 맥도맨드)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쓰리빌보드가 제목인 것은, 경찰서장을 겨냥하여 딸의 범인을 언제 잡을 거냐고 세 개의 빌보드를 빌려 광고를 게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부터 경찰들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어머니의 갈등이 시작된다. 서장의 마지막 편지와 더불어 이 영화 전반에 깔린 메세지가 너무 좋았고, 부족한 점 투성이면서도 손을 뻗어 연대하는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면면에 마음이 녹았다. 미루고 또 미루다가 이제 본 영화인데, 놓치기에는 아쉬울만큼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어제 지하철을 타고 오가며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를 다 읽었다. 국경을 넘어 시카고에 정착한 멕시코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난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벌새>와 <브루클린>을 언뜻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는데, 읽는 내내 주인공 훌리아가 헤쳐나가야 하는 부조리하고 갑갑한 현실 때문에 속상하면서도 내가 그와 너무 닮아있는 길을 고스란히 걸어왔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됐다. 부모님을 사랑하면서도 부모님 때문에 미치겠고, 결코 그렇게는 살 수 없어서 죄책감이 뜨는 많은 이 시대의 딸들을 위한 책이 아닌가 싶다. 내가 그저 내 자신인 것이 미안해야 하는, 온전한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가 없어서 불안하고 괴롭고 죽을 것 같은, 삶에서 너무 많은 걸 바라면서도 동시에 죽고 싶은, 말도 안 되는 모순 속에 갇힌 여성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자라나 살아남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때로는 기적같다. 그래서 더 많은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판단도 조언도 격려도 아닌, 그저 박수를.
요즘은 애플티비에서 <파친코>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다. 늘 엄마와 함께 봐아해서 내 원래 속도보다 천천히 보고 있는데, 날 볼 때마다 오늘은 언제 볼 거냐고 독촉한다. 이렇게 과몰입해있는 엄마와 같이 의견도 주고받고, 함께 분개하고 다음에 어떻게 될지 머리를 모아 추론하는 게 묘미다. 원작 <파친코>를 아직 안 읽었는데, 이제는 구하기도 어려워져서 그냥 원서로 읽을까 고민 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자기 전에 조금씩 원서 읽는 재미에 빠졌다. 원문 그대로 읽는 것도 좋지만 한국어와는 다른 영어의 말맛을 음미하는 재미가 있다. 지금은 미드 글리에서 커트 역으로 나왔던 크리스 콜퍼가 쓴 <랜드 오브 스토리>를 읽고 있는데 동화같아서 좋으면서도 좀더 복잡한 인물과 구성이 나오는 작품도 읽고 싶다. 에이모 토올스의 미번역된 신간 <The Lincon Highway>도 읽고 싶고…. 읽고 싶은 책은 언제나 많아도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