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더 좋은 방법일지도
인생에 정규 트랙 같은 게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특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나는 줄곧 도로가 아닌 사막 한 가운데 서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길을 잃은 것 같아 마음 기댈 곳이 필요했을 때 당시 몹시 존경하던 분이 이 말씀을 해주셨다. 길을 잃는 것은 길을 찾는 방법 중 하나라고. 나중에 찾아보니 아프리카 속담이었는데,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와닿지 않았다. 애초에 길을 제대로 찾는 편이 좋지 않았겠는가, 생각했다. 남들은 다 길을 잘도 찾아가는데 나 홀로 길을 잃어가며 찾는다면 참 속상한 일 아니겠느냐고.
이런 기분은 특히 해외여행을 갔을 때 많이 느꼈었다. 유전적인 요인으로 인해 구제불능의 길치인 나는,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길을 잘못 들어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두 번 다시 못 올 가능성이 매우 큰 이국의 도시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조바심과 함께 화가 났다.
극단적인 효율성과 성과 중심주의를 추구하는 한국인으로서,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길을 나서서는 발이 부서져라 이리저리 쏘다니곤 했다. 그런데 나의 부족한 공간지각능력 탓에 꼭 가야만 하는 곳이 근방에 있을 것이 분명한데, 게다가 폐장시간이나 약속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도 같은 곳만 빙빙 맴돌고 있을 때는 더욱 절망적이었다. 나에겐 그 일들이 모두 나의 어리석음으로 기인한 시간 낭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실은 예전만큼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아주 느린 속도로 걷고 중간중간에 앞으로의 여정을 위한 휴식을 반드시 포함하게 되었을 즈음에는 어쩌면 정말 저 말이 맞으며, 심지어는 길을 잃는 것이 길을 찾는 더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굽이굽이 골목이나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사람들의 삶, 작고 예쁜 가게같은 것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곧 사랑에 빠지는 일들이 종종 생겼기 때문이다. 속도가 느려지면서 시야가 더 커진걸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길을 잃고마는 나의 습성에 잘 적응하게 된 걸까. 어느 쪽이든 내게 생긴 변화가 좋았다.
길을 잃는 것이 인생의 필연적인 한 부분이든지 어쩌면 길을 영영 잃지 않는 것에 비해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행운이든지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길을 잃은 것, 너무 나를 괴롭히지 말고 조금 여유를 가질 수만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지금 길을 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