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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18. 2020

당신의 빈 틈이 좋아요

나의 눈에는 꽃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정해진 책을 읽고 토론하는 교양수업을 들었다. 늘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기를 모토로 삼는 내향인답게 활발하게 토론에 임하지 않았던(보다 정확히는, "임할 수 없었던") 나는 과제에 열과 성을 들였음에도 원했던 성적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그때 대부분 2학년 이상이었던 선배들과 나눴던 대화 한 편이나 책에서 발견한 빛나는 구절은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있다. 



 영문학과 교수님께서 개설했던 강의답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에덴의 동쪽> 등의 책을 함께 읽었는데, 모두 그 수업이 아니었으면 아마 지금까지도 읽지 않았을 것 같은 고전들이었다.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는 것이 과제였고, 그 대신 중간고사는 없었지만 그저 고통을 한 번에(중간/기말고사) 받는 대신 여러 번 나눠서 받 이후에 알게 되었다.

 



 갓 입학했던 나는 물론 내 전공에 대해서도 잘 모르긴 했다만 다른 전공 학생들이 어떤 수업을 듣고 어떻게 공부하는지 매우 궁금했었는데, 어느날 국문학과 학생이 시험 공부로 인해 고통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 편의 에세이를 쓰는 것이 평가 대상이라는 듯 했고, 내게 더 놀라웠던 건 당시 들고 있던 공부하기 위해 들고 있던 한 뭉치의 노트였다. 그 노트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자신의 눈에 꽃으로 보이는 것은 남의 눈에 가시이고, 
 자신의 눈에 가시로 보이는 것은 남의 눈에 꽃이다.



 어떤 고전의 원문을 풀이한 것인지, 교수님의 설명인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문장은 내 뇌리에 감하게 남았고, 나는 며칠동안 곱씹으며 생각했다. 무슨 뜻일지, 내가 이해한 게 맞을지. 그렇다면 정말 그럴지. 




 내 눈에 꽃인 것은 남의 눈에 가시일 수 있다. 그것까지는 쉽게 납득이 갔다. 내가 자랑하고 싶어 안달난, 늘 더 뽐내고 싶은 꽃이 속보이게 바깥으로 전시될 때 그렇게 곱지만은 않겠지. 




하지만, 내 눈에도 못나서 늘 숨기고 싶어하는 나의 가시가 남의 눈에 꽃으로 보일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유형의 사람들, 주로 나와 결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과 자연히 어울려다니던 학교 생활과 달리 사회에서는 이렇게 성격도 유형도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같이 일하자고 한 사무실에 몰아넣는다는 게 참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늘상 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타인의 뒷모습과 내게 존재했는지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되었다.




 내가 생각보다 흠도 많고 가시도 많은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으므로, 그때 나는 저 구절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함께 일하며 가까워지면서, 각자의 삶에서 겹쳐지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이 빈 틈을 보여줄 때 안심하게 된다.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고.



 어쩌면 그런 틈들이 우리에게 쉴 공간을 주는지도 모른다. 더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니라,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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