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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7. 2020

꿈이 우리를 위로하는 방식에 대하여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잠들어야만 입장 가능합니다>, 이미예 저

 나는 어려서부터 꿈을 믿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의 특별한 꿈을. 꿈이 내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고, 나에게 꼭 필요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달됐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꿈이  매번 내게 선사하는 교훈과 즐거움을, 상상의 씨앗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리고 나는 우연하게 이 사랑스러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읽으면서 내가 이런 판타지 소설을, 청소년 문학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새삼 깨달았다.(나는 세 제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부터 완전히 이 책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다음 차례로 읽을만한 판타지 소설을 열심히 찾고 있다. 시리즈면 더 좋을 것이다. 내가 처음 사랑에 빠진 판타지 소설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3권은 조금 기대에 못 미쳤고, 1권이 가장 재밌었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꼭 내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지원하는 것처럼 마음이 설레고 긴장됐다. 이렇게 명확한 입사 동기가 있더라면 면접이며 지원 과정이 얼마나 설렐까?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 조건을 따져가며 수십 곳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면. 


 잠든 손님들이 방문하는 꿈 백화점, 처음에는 설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꿈 백화점에는 잠이 든 손님이 본인도 모른 채 방문하여 꿈을 사고, 꿈의 지불방식은 후불이고, 돈이 아닌 설렘, 깨달음 등 꿈을 통해 느낀 다양한 감정의 일부분을 자동 지급하는 형태라는 설정 하나하나가 마음에 쏙 들었다. (처음에는 자본주의의 노예 답게, 이렇게 멋진 꿈들을 소박한 통장 잔고를 생각해가며 골라야 하고, 이제는 꿈도 돈 내고 사야 한다니 너무 끔찍하지 않나 한참을 생각했다. 게다가, 마음에 든 만큼 후불지급이라면 마음에 안 들었다고 땡깡을 부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모든 이야기가 "꼭 이렇게 전개되어야 하는" 것처럼 진행되었기 때문에 불편함 하나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로맨스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소소하게 등장하는 로맨스 요소도 좋았다.


 거대한 이야기 줄기뿐 아니라 아주 소소한 설정도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태몽은 예지몽의 한 종류라는 것. 그리고 그 태몽을 만드는 할머니는 미래를 관장하는 첫째 제자(책의 신화 속)의 후손이라는 것! 


 이 책의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금쪽같은 교훈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 구절을 읽으면서 언제나 목적지를 보고 달리는 기계같이 살아온 나 자신을 조금 반성했다. 나도 작가가 되고 싶으나, "쓰는 과정"을 책을 "읽는 과정"만큼 즐긴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목적지요? 사람은 최종 목적지만 보고 달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 따위가 아니잖아요. 직접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고 가끔 브레이크를 걸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제 맛이죠. 유명 작가가 되는 게 전부가 아닌걸요. 전 시나리오를 쓰면서 사는 게 좋아요. 그러다가 해안가에 도착하든 사막에 도착하든 그건 그때 가서 납득하겠죠.”


 꿈을 꾸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시험의 압박감에 시달리는 여자의 이야기. 분명 졸업한지 한참 되었는데도 그때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던. 나는 정말 공부가 나의 인생의 전부였고, 원하는 대학을 진학하지 못하면 인생이 끝나는 줄로 알았기에 외줄타기하듯 절박하고 위태롭게 살았었다. 그런데 마침내 졸업을 하고 일을 하는데도 그때의 긴장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 시험뿐 아니라, 나의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나의 마음에 대해 생각할 때 요즘도 종종 괴로워진다. 이런 내게 다음 구절이 위로가 되었다. 그 모든 시절을 겪고 난 내가, 아직도 멀쩡히 살아 숨쉬는 내가 얼마나 대단하고 강하고 대견한지. 


그리고 그 꿈을 이미 견뎌 낸 이상, 그건 더 이상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의 업적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생략)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거꾸로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 나가던 때일지도 모르죠. 이미 지나온 이상,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랍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이렇게 건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손님들께서 강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런 책은 자기 전 조금씩 아껴가며 읽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너무 재밌어서 심장박동 수가 올라가 숙면에 도움은 안 될 것이고, 나같이 성격 급하고 "재미"추구형 인간은 다 읽어치우고 자겠지. 좋아서 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구절이 참 많다. 그중 내 마음에 꽂혀들어온 구절을 하나 더 소개한다. 여러분의 일상에 이 책이 한 줄기의 위로와 힘이 되기를.


“여러분은 언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십니까?” 그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대화하듯 말을 건넸다.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기분이 드는 날도 있을 겁니다. 올해의 제가 바로 그랬죠. 저는 이번 꿈을 완성하기 위해 천 번, 만 번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꿔야 했습니다. 하지만 절벽 아래를 보지 않고, 절벽을 딛고 날아오르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 독수리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꿈을 완성할 수 있었죠. 저는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꿈이, 그런 여러분에게 영감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겁니다. 큰 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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