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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7. 2020

가족, 그 복잡한 굴레에 대하여

<가족의 세계>, 조영은 저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서 읽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나에게 필요한 책일줄 미처 모르고. 읽는 내내 상담선생님과, 그분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생각이 났다. 상담을 받은 게 실로 잘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상담을 받으며 들었던 말들, 나는 부모님의 감정과 삶에 책임이 없다는 것, 아직까지도 나를 짓누르고 있던 과거는 모두 지나나갔고, 현재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현재의 내 삶이라는 것 등의 말을 고스란히 이 책이 다시 이야기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나도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대다수의 한국인들, 특히 한국 땅에 사는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짊어진 짐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남성은 하지 않는 수많은 희생과 감정노동들이 우리의 의무가 되어 발목을 잡는다. 여성으로부터 여성으로 이어진 그 굴레를 끊어버리기가 너무도 어려워서 고통에 겨워한다.



  <가족의 세계>를 읽는 내내 나는 나를 보았고, 내 가족들의 인생사를 보았고, 또 내 전 직장동료들, 내 친구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타인을 사랑하게 되는 첫 번째 관문이 아닌가 싶다. 가족들, 특히 부모님과 크고 작은 일들로 부딪힐 때,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대중교통에서 최소한의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 우리에게는 그를 이해할 마음의 여유도, 상상의 폭도 없다. 내가 나고 자란 환경의 범주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책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 우리 모든 사람은 결국 상처받은 어린아이에서 비롯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성장과정에서의 결함 때문에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 아빠, 엄마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매여있는 나, 착한 딸로서의 정체성을 잃을 수 없어 모두에게 희생하고 그것을 전시하는 엄마의 내면을 엿보았다. 그외에도 능력으로서 본인을 증명해야만 했던 전 팀장이나 첫째딸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득 짊어진 내 상사를 이제는 정면으로 마주보게 된 것 같았다. 이전에 책에서 읽고는 마음에 담아두었던 다음의 구절이 생각났다.



지금까지 인터뷰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를 꼽는다면,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에게 들은 “성격은 생존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 <태도의 말들>, 엄지혜 저



  이 책의 손꼽히는 장점이란 첫째로 한국인이 쓴 책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풍부하고도 구체적인 사례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꼭 들어맞을 만하다는 것이다. 내가 특별히 공감한 것은 모범생으로 살아오다가 이혼을 경험하게 되어 괴로워하는 현진 씨, 자신의 상처를 오히려 공격대상으로 삼던 원가족으로 인해 방어기제를 발달시켜 본인도 본인의 속마음을 모르게 된 재호 씨, 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딸로서 존재하던 미경 씨 등이었다. 누구나 공감할 법한, 그리고 우리 누구나 보았을법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 책이 특별히 좋았던 두번째 이유로는, 그러한 수많은 사례들 덕분에 전혀 어렵지도 너무 아프지도 않게 내 상처를 겨냥해준다는 데 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 많구나, 스쳐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엇비슷한 상처를 품에 안고도 하루하루 잘 살아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해진다. 우리는 마음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처한 실존적 한계 때문에 서로에게 가닿기 어려운 것 같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이런 책을 읽을 때 나를 변화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열심히 읽었지만, 지식이 아닌 태도와 반복적인 연습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도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일상을 살아나가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응원, 그리고 토닥임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참, 이 책과 더불어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풍부한 인물들과 따스한 위로가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바로, 이미예 작가님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잠들어야만 입장 가능합니다>이다. 우리에게는 충분한 위로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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