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로 변해버린 집

빈집털이 방화범 사건.

by 칠오이

당시에 신문에도 날 정도로 큰 사건이었는데,

빈집털이 연쇄 방화사건이었다.

그중 한 피해집이 바로 우리 외갓집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골목과 골목을 내려와야 있는 뒤집어진 ㄷ자 형태의 주택인데

연쇄방화범에 의해 본채가 다 타버리고 건너방이라 불리던 작은 방한칸과

밖에 있는 작은 화장실만 남았다.

천만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그동안의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와 이모들의 모든 추억이 다 잿더미가 되었다.


양말하나 건질 수 없이 새카마케 타버린 집에 남은 건 건너방에 있었던,

할머니의 새카만 미싱기만 남은셈이다.

어릴 적 엄마와 이모들의 사진,

엄마가 사드린 할머니의 몇 번 입지 않은 첫 모피코트,

무엇보다 아까운 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큰 이모를 간호하면서 쓰셨던 병상일기였다.

아들 셋, 딸 하나를 먼저 보냈지만, 좀처럼 큰 이모의 이야기를 하시지 않았던 할아버지...

후에 막내이모를 통해 알게 된 이야기 중 하나로, 할아버지의 가장 아픈 손은 큰 이모였다고 한다.


이모가 아프기 시작한 순간부터 돌아가시는 날까지 할아버지가 빠짐없이 썼던 병상일기는,

오늘은 상태가 어땠고, 무슨 약과 주사를 얼마나 맞았는지,

무얼 먹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덤덤히 빼곡히 적혀있었다고 했다.

이후 할아버지가 3개를 그대로 뺏겨 적어서 언니 오빠들에게 나눠주려고 하셨었다고 한다.

그러나 방화범 사건 때 모두 불타 없어져 버렸으니.. 할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허탈하셨을까..


하지만 이모에게 들은 이야기가 참 다행이면서 더 마음이 아팠는데.

병상일지가 불타 없어져서 속상하지 않냐는 이모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 차라리 잘됐다 싶다. 그기 남아있어 가 내가 시번을 더 써서 아들 나나 줄라 캤는데, 그랬으면

내 맴이 더 아팠지 싶다. 없어지가 못 보고 안보이께 차라리 났다. "라고 하셨다.

( 차라리 잘됐다 싶다. 그게 남아있어서 내가 3번을 더 써서 애들한테 나눠주려 했었는데,

그랬으면 내 마음이 더 아팠지 싶다. 없어져서 못 보고 안 보니까 차라리 났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 타버린 집을 떠나지 않으셨다.

남아있는 건넌방에 다시 작은 살림을 차리셨다.

자식들을 키우고 보낸 그 집을 떠날 수 없으셨던 모양이다.

보일러도 제대로 들지 않는 작고 작은 방한칸에서 두 분은 몇 번의 여름과 몇 번의 겨울을 보내셨다.

교회핑계도 이웃핑계도 대시면서 대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사셨다.


엄마는 또 구두를 신고 울퉁불퉁한 골목을 과일과 과자를 날랐고,

그때마다 두 노인은 변함없이 대문 앞을 서성이시며 아이고.. 하셨다.

많이 사 온다고 화를 내시던 할아버지는 해가 지날수록 화를 덜 내셨다.

어느 해부터는 오히려 우리 엄마의 목소리가 더 커지기 시작했다.

전기 아끼는 거, 보일러 아끼는 거, 보일러도 에어컨도 제대로 켜지 않고 하는 생활에 엄마는 화를 냈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화를 내기보다 배시시 웃으셨다.

대구에 갔다 오는 길마다 엄마는 속이 상해 견디질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들과 엄마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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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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