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김치와 칼국수
비가 오는 토요일,
고인이라는 단어가 낯선 할머니의 음식이 그립다.
난 사실 할머니의 음식을 많이 먹고 자라진 않았다.
맵고 칼칼한 갈치조림을 좋아했던 할머니가
위암투병 생활을 오래 하신 할아버지 때문에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할머니는 음식을 싱겁게 했기 때문에 썩 맛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겨울 비가 내리는 오늘 그리운 음식이 있다면,
할머니의 손칼국수와 파김치다.
10년도 더 지난 어느 날이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 할머니 저녁에 국수시키무까? '라는 내 말에
' 국시? 그거를 돈 주고 사묵나? 내사, 내가 한기 젤 낫드라. 내 해주꾸마.. '
점심 상을 치우고 할머니가 밀가루를 꺼내고 밀대를 들었다.
그때는 아니었지만, 베이킹을 배운 지금의 나로서 생각해 보면 할머니의 손레시피는 참 대단한 것이었다 싶다.
양푼이에 밀가루를 대충 털어내고,
물을 쉬쉬 부어가며 손으로 치대면 , 마르지도 질지도 않은 반죽덩어리가 되었다.
' 이기 쫌 치대야 맛있다.'
쪼글쪼글 주름 가득한 손으로 한 손으로는 양푼이를 돌려가며 다른 한 손으로는 반죽을 치대면,
동글동글 귀여운 덩어리가 완성되었다.
그거를 한두 시간 타이머도 없이 숙성이라기도 뭐 하지만, 비닐을 덮어 한참을 두었다가
늦은 오후 도마에 밀가루를 술술 부어서 그 위에 반죽을 툭 놓고
밀대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납작한 반죽이 되었다.
그걸 또 두세 번 접어서 칼로 다박다박 썰어내니 금세 칼국수 면이 되었다.
나는 옆에서 반죽을 조금 뜯어내서 손장난을 치면서 할머니가 어릴 때
' 칼국시 이기 얼마나 먹고 싶던지..'
' 느그 할배땜시롱 내가 칼치찌개 그거 칼칼하이 묵고저븐거 한 번을 못무보고 이적꺼지 살았다.'
그 말에 내가 ' 엄마한테 사주라 할까? ' 하면 곧바로,
' 으으응~ 엄마랑 이모한테 절때로 말하지마래이~ 내는 평생 먹고저픈게 업따! '
하시면서 고개를 절레절레하셨다.
멸치 다시마만 넣고 푹 끓인 육수에,
내 주문대로 애호박과 감자, 양파만 넣은 고명.
손으로 만들어준 투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칼국수 면,
난 양념장을 넣지 않기에 오로지 그 맛만 즐겼다.
' 와- 진짜 맛있다. 너무 맛있다. '
과정은 간단해 보였지만, 반나절의 시간을 들여 만든 칼국수 한 그릇.
내가 엄청 많이 좋아하는 걸 아시기에 한솥을 끓여놓고는
' 더 잇데이~' 하시고는 내가 먹는 걸 구경하셨다.
' 어이고 그거를 그래 많이 묵나. 뜨겁다 천천히 무라. '
내 입모양 따라 움직이는 할머니 입모양.
내 손길 따라 움직이는 할머니의 시선.
그리고 흐뭇한 입꼬리.
그 미소와 시선에 보답하고자 나는 엄지를 막 치켜세우면서
박수도 치고 한입에 한번 맛있다를 연신 남발하면
할머니는 박장대소를 하시며, ' 난 간도 안 보았다 ' 하시고 그제야 한술 뜨셨다.
' 더 줘, 더 줘, 할머니는 쫌만 무라, 내 다 묵고 가구로. ' 하면
' 오야오야- ' 하시고, 그렇게 한솥을 다 비우면 혀를 쭉 빼시고는 ' 어이구 무시브래이 이 많은걸 다뭇나 '
나에게 버거운 양은 맞았지만,
반나절 공들인 정성을 생각하면 한 줄기 면도 버릴 수 없었다.
내가 비운 솥을 몇 번이나 들여다 보시고는,
그다음 날도... 점심은 손칼국수였다. ㅋㅋㅋㅋㅋ
또 하나는 할머니가 심심하다. 하시면서 시장에서 한 단씩 사 와서
만들어주시던 파김치다.
' 익으면 맛없다 ' 하시던 파김치는 꼭 한 단씩만 사서 양념을 발라서 예쁘게 담아주셨는데,
막 양념을 무친 파김치는 그냥 먹어도 맛있다.
' 파김치 진짜 맛있다. 큰 이모보다 더 잘한다 '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 내사 간도 안 보고 했다 '
늘 간도 안 보고 했다지만 맛있는 손맛.
이튿날 막내이모에게 전화가 와서는 한소리를 들었다.
' 할머니한테 이제 음식 맛있다 하지 마라!!. 니 해준다고 다리도 아픈데 나가가지고 하루종일 반찬한다고,
허리 아프고 손 아파서 몇 날 며칠 고생했다. 이제 그거만 먹고 더 해달라 하지 마!! '
그날 이후 할머니의 파김치는 먹을 수 없었다.
기억에만 남아있는 손칼국수와 파김치.
그리운 이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