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중입니다.
할머니는 1월 17일 새벽 4시에 돌아가셨다.
자식 넷을 앞서 보냈고,
아들 하나 없었고,
말없는 할아버지와 재미없게 살았다.
먼저 보낸 큰 이모를 대신해 손주 셋과 막내 이모를 함께 키웠다.
그때 할머니 나이가 40 후반이었다.
자식을 보낸 할머니도 가여웠고,
어린 자식 셋을 두고 눈감은 큰 이모도,
엄마를 잃은 어린 사촌언니 오빠들도,
그리고 그들과 서너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았던 막내이모도 불쌍했다.
가난한 살림에 각자 방이 있었을 리 만무했다.
덩치 좋은 오빠들을 대신해 할머니는 늘 배를 곯았다.
모두가 불행했던 그 시절을 보냈기에, 우리 외가식구들은 꽤 돈독하다.
할머니가 키운 1번과 3번 사촌오빠는 임종전날 와서 한참을 울고 갔다고 한다.
아들이 없고 장손이니 기꺼이 상주를 맡기로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40이 다 되어 태어난 막내 이모는 가장 가엽다.
태어나보니 이미 늙은 엄마 아빠, 조카들과 함께 자라고,
나이차 많은 언니들은 일찍이 결혼해 먼저 부산으로 떠나
혼자 대구에 남아 부모님과 조카들을 같이 돌보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막내 이모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더 애틋했다.
왜냐면 늘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고,
자식들이 돌아가고 나면 허전하고 쓸쓸해하는 모습도 보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 한 사람은 그리움이 더 커서 슬프고
최선을 다 하지 못한 사람은 후회가 커서 슬프고
우리는 모두 그녀를 잃어서 슬프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사셨고,
견뎌내셨고, 우리에게 넘치도록 큰 사랑만 주고 간 할머니 덕분에
우리 가족들은 모두 마음이 단단하고 건강한 사람들로 자랐다.
장례식장에 자리가 없어서 일요일까지 대기하고
일요일에 입관을 화요일에 발인을 한다.
이 글이 발행되었을 때쯤이면 화장이 끝 낫을 무렵이겠다..
할머니가 미싱을 하실 때, 빨래를 개실 때,
파를 다듬으실 때, 멸치 똥을 따실 때 흥얼거리던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 말없는 한숨은 동남풍 되고, 나의 눈에 눈물은 대동강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