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길..
내가 초등학교 무렵 살던 아파트 입구 작은 슈퍼마켓 앞에는 공중전화박스가 있었다.
당시 40원이었던 전화 한 통에,
100원을 넣고 60원이 남으면 다음사람을 위해
수화기를 전화기 위에 올려놓는 따듯한 문화가 있었다.
학교를 갔다 오는 길, 학원을 갔다 오는 길 하루에 몇 번이고 지나가는 그 길에
수화기가 올려져 있으면 언니랑 나는 어김없이 달려가서 053-6**-02** 번호를 눌렸다.
" 여보 세오 - " 할머니다!
할머니- 나야. 할머니 나야.
언니랑 나는 작은 수화기를 붙들고 둘이서 각자 이름을 말하며
할머니한테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불 아끼지 마세요 기름 아끼지 마세요 놀러 갈게요-
마치 할머니의 기도처럼 늘 하던 말들을 최대한 빠르게 내뱉었다.
할머니는 " 그래그래. 오야오야. 공부 잘하고 엄마 말 잘듣그래이-" 하시면서
서로 각자의 말만 빠르게 내뱉고는 40원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전화는 자동 끊겼다.
우리는 100원을 더 넣을 생각은 없이 끊으면 끊기는 대로 20원이 남은 수화기를
다시 전화기 위에 올려두고 떠났다.
할머니는 우리가 지나가다 남아있는 60원으로 전화를 하는지 아시는 터라,
그렇게 끊기는 전화에 따로 걱정을 안 하셨다.
명절이고, 방학에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이모나 엄마에게
' 아들이 너거보다 전화 자주 한다! ( 얘들이 너네보다 자주 전화한다 ) ' 하시면서
자주 전화 안 하는 딸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내비침과 동시에 우리 칭찬을 같이 하셨다.
할머니에게 있는 10명의 손주들 중에 전화를 자주는커녕 하기라도 하는 건 우리 언니와 나뿐이었다.
40원으로 통화가 가능했던 시간이 대략 몇 분 정도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1분 남짓 됐을까..?
아무튼 그 짧은 시간 속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했던 가장 많은 말은
" 전화해 줘서 고맙데이- "였다.
할머니가 키운 큰이모의 자녀들은 성인이 된 후에 할머니에게 종종 용돈도 드리고 했지만,
할머니가 늘 칭찬하는건 자주 전화해주는 언니와 나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진으로는 많이 남아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목소리가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지금처럼 폰이 좋지 않아 화질도 별로고, 뭔가 동영상을 찍고 남긴다는것이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영상과 음성이 없다는게 참 아쉽다.
그래서 이모는 할머니가 혼자 자주 부르시던 출처 미상의 민요를 부르실때
몰래 녹음해 음성파일로 남겨놨다고 한다.
훗날 그 음성을 들으면서 나에게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그 목소리가 오버랩되면서 기억나겠지..
40원이 주었던 기억과 행복. 잊히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