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장 골목길 위 엄마의 빼딱구두

흙수저 엄마

by 칠오이

난 어릴 때부터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질 수 있었다.

부족함 없이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었는데,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흙수저로 태어난 우리 부모님 덕분이다.


엄마와 아빠 모두, 지독 시리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20대에 가정을 꾸린 두 사람은 ' 왜 세상의 수많은 아파트 중에 내 집은 없나? '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오로지 빨리 일어서고, 자녀들은 여유 있게 키우자!라는 목표아래,

타고난 근성과 총명함,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노력하여

우리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 형편이 좋아질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60이 넘은 나이에 친구들은 다 은퇴한다고 하지만,

두 분 다 각자의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끊임없이 하고 계신다.


지금도 엄마는 종종 자신의 어린 시절을 한탄하는데,

너무나 가난했지만, 그것이 가난인지 조차도 모르고 컸다고 한다.

지금은 가난하지 않으니,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지만,

들어보면 그 시절 소녀였던 엄마의 삶은 꽤 가여웠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우리를 키웠던 엄마는

대구 외갓집에 가는 날이면 꼭 우리에게 백화점 옷을 입혔고,

자신은 제일 예쁘고 좋은 옷에 뾰족구두를 신었다.

집 근처 청과 시장에서 과일은 종류별로 한 박스씩 샀고,

슈퍼마켓에서 할아버지 알사탕과 강냉이도 대여섯 봉씩 사서 아빠의 무쏘 트렁크를 꽉 채워서 갔다.


할머니 집은 골목을 내려가서 또 있는 골목 한복판에 있는 작은 주택이었는데,

갓길에 주차를 해놓고 제대로 포장이 안된 울퉁불퉁한 시멘트 돌이 깔린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또 다른 골목 한 블록을 지나서 또 비슷한 비포장 골목을 내려가야 나왔다.

엄마는 뾰족구두에 한가득 짐을 안고 옆으로 아슬아슬한 게걸음으로 그 길들을 총총총 내려왔다.

아빠 엄마가 두세 번씩 차에 왔다 갔다 해야만

부산에서부터 싣고 온 짐을 그제야 할머니 집에 다 넣을 수 있었다.

그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는 대문 앞과 마당을 서성거리며 멀 이렇게 많이 사 왔냐고 아이고 아이고 하셨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지나치게 많이 사기도 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어린 명절 기억 속에 늘 있었던 우리 집 풍경이었지만,

엄마에게는 너무나 슬픈고 비참한 기억이라고 했다.


커서 친정집을 나와보니 자기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알게된 엄마.

결혼해서 잘 살고 싶었고 그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매번 예쁜옷에 구두를 신고,

또 엄마가 그렇게 사다 나르지 않으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뭘 사서 사 먹을 줄 모르는 그 모습이 너무나 싫어서

사탕 한 봉지까지도 직접 사다 드렸다고 한다.

사다드릴수 있어서 행복했지만, 그 좋은 옷과 신발을 신고 그 길을 걸어 내려갈때 마다

엄마는 눈물을 삼켰다고 한다.

' 우리 엄마는 왜 직접 사먹지 못할까..' 속이 상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할머니는 세탁기를 사드렸지만 손빨래를 하셨고,

그 좋은 세제들이 나와도 쩍쩍 갈라져있는 말라비틀어진 빨랫비누를 사용하셨다.

용돈과 생활비를 드려도 돈을 쓰실 줄 몰랐다.

매번 아끼는 모습에 이모랑 엄마한테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

머쩍게 웃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돈을 쓰면 자식들이 다 좋아할 텐데, 왜 매번 저렇게 아껴서 자식들이랑 싸울까. 답답했던 적도 있었다.

다른집은 돈을 많이 써서 싸울텐데, 우리집은 돈을 안써서 싸웠다.

엄마랑 이모가 준 용돈들,

안쓰고 안먹고 아끼고 모은 그 돈들은 결국

돌아가신 큰이모의 아들들, 즉 손주들의 뒷치닥거리에 모두 사용하셨다.


가여운 할머니. 바보 이순연...


keyword
화, 금 연재
이전 03화박복한, 아니 다복한 키다리 할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