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 사랑이 최고야

18세 이순연 박씨 총각에게 시집가다.

by 칠오이

우리 할머니는 늘 사랑이 최고야를 외쳤다.

우리들에 대한 기도 끝에도 ' 어디에서나 사랑받게 해 달라'는 말을 꼭 붙이셨으니..

내 연애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고,

내가 어디서 누구랑 잘 지내고, 누가 나한테 잘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작은 눈이 반짝반짝거렸고, 주름 가득한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지는 것이

꼭 18세 소녀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녀의 과거 속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랑이 최고야를 외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경상북도 군위와 의성 언저리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연이는 비록 아들이 최고인 시대에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딸이었다.

연이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던 아버지는 연이가 18살이 되던 해

옆 마을 국민학교 선생인 최씨에게 시집보내기로 하고

아끼는 딸을 시집보내기 전 최씨를 직접 한번 보기 위해 옆 마을로 가게 되었는데,

마을이 어찌나 멀었던지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 논두렁에 앉아 쉬면서

' 이렇게 먼 곳에 딸을 시집보냈다간, 살아생전 딸을 다시 만나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혼인을 취소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일어나려 단 찰나,

논을 매고 있던 성실하고 건장한 청년 박씨가 눈에 띄었다.


' 자네 혹시 혼인을 하였는가? '

마침 총각이었던 박씨, 아버지 눈에 성실하고 건강해 보였고 무엇보다 바로 이웃마을이니

보고 싶을 때마다 연이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 하나로,

그 자리에서 연이와 박씨의 혼인을 약속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셨다.

한편, 선생 최씨에게 시집을 간다고 생각하고 들떠있던 연이는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아버지에게 이웃마을 농사꾼 박씨에게 시집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결혼풍습(?)이지만,

그 시절 저 멀리 딸을 시집보내기 싫은 아버지의 마음 역시도 흔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웃마을 박씨 (우리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가게 된 18세 연이.

그녀의 바람대로 근사한 선생님의 아내가 되지는 못했지만,

어찌 보면 그 때문에 나도 존재하고 엄마와 이모들도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 인연이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라 믿는다.


농사꾼 박씨와 결혼한 후 넉넉지 않은 살림을 이끌며 시집살이를 했고,

매번 시어른들과 남편, 시동생들에게 밥을 퍼주고 솥 밑바닥을 긁으며 물로 배를 채우고

정지(부엌의 사투리)에서 혼자 눈물을 흘렸다던 할머니의 20대 시절은 정말이지 가여웠다.

먹을 것이 넘쳐나다 못해 쉬어빠지는 세상 속에서도 쉰내 나는 반찬마저도 아까워했던 우리 할머니는,

이제는 살만한 자녀들의 핀잔에도 웃으면서 ' 나는 쉰 거 잘 모린다. 아까 버서 먹고 치아 삐야 된다. ' 하셨었다.

아끼는 게 습관이고, 몸에 베인 절약에 늘 엄마와 이모들에게 쓴소리를 들었지만,

평생 고치지 못한 절약이라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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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을 두고도 오래된 것만 손대고,

세탁기를 두고도 손빨래를 했고,

청소기를 두고도 구부정한 허리로 머리카락을 일일이 손으로 줍드라,

밤마다 앓는 소리를 했던 미련했던 우리 할머니.

나는 뜨거운 건 먹을 줄 모른다 하시며 다 식어가는 차가운 국만 먹을 줄 알았던 그녀가

따듯한 음식을 하도 먹어보지 못해서 그랬다는 걸 왜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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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세상을 살아서, 그런 시대를 겪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라는 것을 그때 이해했더라면.

인간 이순연을, 여자 이순연을 인정했더라면, 조금 더 따듯한 말로 안아줬더라면.

그때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사랑이 최고라던 할머니에게 10첩 반상의 좋은 음식이 대수였으랴,

그저 따듯한 말 한마디면 되었을 것을..

할머니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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