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한, 아니 다복한 키다리 할매

아들 셋, 딸 하나를 먼저 보낸 슬픔.

by 칠오이

바랐던 선생 최씨 대신 농사꾼 박씨와 혼인하게 된 18세 순연이.

예부터 큰 키에 큰 덩치 때문에 키다리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이순연 할머니와 박재훈 할아버지는 연애도 사랑도 없이 결혼을 하였지만,

아들 3, 딸 5를 놓는 아이러니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기억이 존재하면서부터 큰 이모라 불리는 큰 이모가 있다.

큰 이모는 실제로 할머니의 5번째 딸이며,

우리 엄마는 6번째 딸.

미국에 사는 이모는 7번째 딸.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막내 이모는 할머니가 무려 마흔이 넘어 놓은 8번째 막내딸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외삼촌과 진짜 큰 이모는..?

할머니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을 연달아 셋 놓으셨는데 ,

모두 5세를 넘기지 못하고 떠나보냈다고 한다.

거의 70년 전 이야기였지만,

살아생전 할아버지는 마치 어제 일처럼 세 아들에 관한 몇 가지 안 되는 추억을 잊지 종종 늘어놓으셨고,

할머니는 좀처럼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대신 할머니는 돌아가신 4번째 딸, 진짜 큰 이모에 관해서는 참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사촌오빠 둘과 사촌언니 하나, 총 세명의 자녀를 놓고 투병 생활을 하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큰 이모에 대한 그리움과

남은 손주들, 혼자가 된 사위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할머니는 평생 가슴 한편에 멍을 안고 사셨다.

큰 이모가 돌아가셨을 무렵 사촌 언니와 오빠들은 막내이모와 10살 터울도 채 되지 않는 나이였으니,

할머니 마음이 더 안타까우셨을 테지..

졸지에 혼자 남은 젊은 사위 외롭게 살지 말라며,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 세명의 손주들까지 모두 거두어 키우셨다.

이모부는 결국 재혼을 하지 않으셨지만, 할머니는 배 곪는 삶을 50이 넘은 나이까지도 이어하셔야 했다.


모두 자기 밥벌이를 하게 되어 할머니 품을 떠 낫을 때,

이제 더 이상 배를 곪지 않아도 될 때,

내일의 걱정과 자식 걱정을 한시름 놓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진짜 노인이 되어버렸다.

세상은 너무 살기 좋게 변했지만 할머니는 이 좋은 세상을 즐기기에는 너무나 늙어버렸다.

자식들이 좋은 고기를 사줬지만 씹을 수 없었다.

원 없이 먹어보고 싶다던 칼칼하고 짠 갈치찌개를 실컷 드실 수 있는 형편이 되었지만,

위암 투병을 오래 하셨던 할아버지에 맞춰 희멀건 음식만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가난했고, 배운 게 없었지만, 너무나 총명했던 할머니는 항상 지난 삶을 아쉬워했다.

할머니가 덜 똑똑했다면, 이런 아쉬움도 몰랐을 텐데..

이 좋은 세상에 태어 낫더라면,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더 젊었더라면, 공부를 할 수 있었더라면,.. 아쉬워하던 그녀의 삶.


소학교에 다닐때 이야기를 10대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 하던 모습,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시절이 되면 어린 순연이가 되던 얼굴,

집안일처럼 작고 소소한 일도 어떻게 하면 더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을지 생각을 가지라고 했던 할머니.

맵시 있게 차려입은 우리 엄마를 부러워했고,

똑똑한 막내 이모를 자랑스러워했으며,

예쁘게 꾸민 내 모습에 데이트하러 나가냐며 호기심 가득하게 물어보고,

베란다에 숨어서 어떤 차를 타고 가는지 훔쳐보던 귀여운 할머니.


아들 셋에, 딸 하나를 가슴에 묻는 순간에도 위로는커녕,

자식 먼저 앞세운 박복한 키다리할머니라며 손가락질 받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딸이 최고인 시대가 되자,

난 딸이 많아서 좋고 우리 딸들은 아들 열명 목아치 한다고 동네방네 큰 목소리로 자랑하며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 1동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다복한 할머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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