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잠에 가게 하소서.
오늘 새벽 할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지난 추석 때부터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막내 이모는 잠시의 틈만 나면 병문안을 다녀왔고,
갈 때마다 간호사 선생님들까지 챙겨드리는 간식 + 감사인사 덕분에
우리는 다른 보호자들보다 어렵지 않게 할머니 면회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안 좋으시다는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던 터라
나빠지기 시작한 게 어떤 과정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 면회를 다녀온 이모랑 통화를 하면 느껴지는
이모의 목소리의 정도에 따라 할머니의 상태를 가늠했다.
어느 날부터는 이모가 ' 할머니가 이모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기다려주시는 것 같아 '라고 말했다.
슬픔의 목소리가 어느 날부터는 아픔으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할머니께서 많이 괴로워하셨기 때문이다.
추석 이후로 가래가 많이 심하셨고 호흡이 안 좋으셨다.
주무시는 듯 눈은 계속 감고 계셨지만 호흡을 하실 때마다 미간에 인상을 엄청 쓰셨다.
이모는 울며 기도했다.
' 엄마 이제 편하게 가세요. 하나님 엄마 가래를 삭여주세요.'
좀처럼 누구에게도 아픔과 슬픔을 터 놓는 법이 없는 우리 엄마는
늘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할머니를 보러 가는 걸 피했다.
나보다도 할머니에게 안 가봤으니 말이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다녀오거나, 이모에게 소식을 전해 듣거나, 병원에서 온 사진을 볼 때면
며칠을 힘들어했다. 견디지를 못했다.
그래서 마주하고 싶지 않아 했다.
우리는 처음에 엄마가 후회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쓴소리도 했지만,
나중에는 모두 엄마를 이해했다. 왜냐하면 엄마는 할머니를 보고 나면 며칠을 너무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엄마도 병원에 갔다.
할머니는 이제 소변도 나오질 않았고,
그래서인지 얼굴이랑 팔은 마른 뼈와 늘어진 가죽뿐인데,
발과 다리는 터질 듯 부어있었다.
하루 4캔이라 적혀있던 머리맡 표지판은 금식이라는 빨간 글자로 바뀌어 있었다.
호흡기 속 입술은 부르터 딱지가 앉아있었다..
주름이 너무 많은 자기 얼굴을 보며 슬퍼해서
1일 1팩을 하던 귀여운 할머니,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도 촘촘한 빗으로 머리를 빗어 비녀로 쪽지고
평생 치마만 입으셨고,
늘 새카마케 염색한 머리를 유지하셨다.
에리(카라)가 예쁜 옷,
화려한 패턴과 푸른빛의 무늬가 있는 옷을 좋아했다.
순대를 좋아했고, 삐국물(곰탕)을 좋아했다.
튀긴 거 먹지 마라고 잔소리하면서 새우튀김을 그렇게 좋아하셨다.
잔소리도 많고 눈치도 빨라서 얄미울 때도 많았는데 웃기기도 진짜 웃겼다.
할아버지가 너무 말이 없으셔서 말 많은 사람을 좋아했는데 그래서 내가 좋았나 보다.
모두 우리 언니가 예쁘다고 했지만 유일하게 할머니만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예쁘다고 했다.
95세의 할머니는
큰 체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은커녕, 관절염에 관련된 수술도 한적 없으셨다.
단지, 허리가 좀 아프셨고, 요양병원에 가시기 전에 약간의 치매증상이 전부였다.
사랑이 최고다고 늘 말씀하셨던 할머니는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가셨다.
엄마를 기다렸을까..
할머니는 엄마가 다녀가고, 대구에서 돌아가신 큰 이모의 손주들.
먼저 보낸 딸대신 자기가 키운 손주들이 모두 다녀가고,
새벽녘 엄마랑 이모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 혼자 떠나셨다..
우리가 다 있을 때 가지..
평생하셨던 그녀의 기도 끝에 있던 ' 자는 잠에 가게 하소서...' .
할머니가 돌아가셨단 소식을 아침에 듣고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이상했다.
오전이 지나고서야 눈물이 갑자기 막 흐르기 시작했다.
세상은 어제와 같이 흘러가는데 나의 오늘에는 할머니가 없다.
' 사랑받고 살거라, 사랑받는 사람이 되거라. '
할머니에게는 사랑이 최고였다.
할머니 . 같이 저녁 자주 못 먹어드려서 죄송해요.
사랑해요 할머니, 사랑 많이 줘서 사랑 가득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