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 Jan 31. 2022

저는 녹차라테로 하겠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오후의 나른함이 찾아올 때쯤 모니터 너머로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 씨, 뭐 마실래요?

카드를 들고 묻는 질문에 답을 찾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지 모른다.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 질문은 대부분 상대 쪽에서 결제를 하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때가 많았다. 고작 음료 한잔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수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상대에게 작은 신세라도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음료를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은 마음을 오가며 어떻게 하면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사양할 수 있나 고민했다.

 아, 저는 별로 생각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최대한 무해한 표정을 지으며 거절했지만 한사코 메뉴를 물었다. 예의상 거절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지만 정말 나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두 번의 거절 후에 더 이상은 서로가 민망해서 빠르게 상황을 끝낼 답을 줘야 할 것 같았다.


정말 뭔가를 마실 생각이 없는데, 커피는 싫고, 무난하게 티 종류면 될까 싶지만 어떤 종류가 있는지 모르겠고, 그냥 빨리 이 질문에 답을 주고 상황을 끝내고 싶은 마음…


 그럼, 저는 녹차라테요.

겨우 답을 짜내서 한 후에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이 짧은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타인의 눈치를 무척 많이 본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사람들의 표정과 눈썹, 목소리와 제스처를 통해 읽는다. 가끔은 말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주관적인 느낌을 통해 상대의 마음과 감정을 멋대로 판단하기도 한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얼굴 근육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지레짐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의 변화를 세심하게 찾아낼 수 있다는 장점과 동시에 멋대로 넘겨짚고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쓰임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는 도구들처럼 사람이 가진 장단점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것이다.


아직 나는 가진 장단점을 능숙하게 다루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전히 나는 서툴고 모난 돌이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굴러가기를 연습하는 건지 모른다. 언젠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저 조금 불편할 뿐, 당신을 싫어하지 않아요.

작가의 이전글 지금 일이 삽질은 아니겠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