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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an 21. 2022

세상에, 제가 보이시나요?

일등도 꼴등도 아닌

뚜렷한 꿈도 목표도 없던 중학생의 나는 매일을 방관하며 흘려보냈다. 10대 초반까지는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며 예쁨 받기 위해 살았지만 욕심을 모두 충족시킬 수 없음을 알게 된 이후로는 적당히 살았다. 미래를 설계하며 열심히 살지도 않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열심히 즐기지도 못했다. 누군가의 눈 밖에 나지 않으면서 눈에 띄지 않을 만큼만 움직였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조용히 숨죽이며 살았다. 성적으로 앞선 아이들은 서로를 살피며 경쟁하기에 시끄러웠고, 내신에서 멀리 떨어진 아이들은 자신을 드러내며 소란스러웠다. 나는 그 속에 섞이지 채 조용히 지내고 싶을 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어수선한 너희와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모른다. 혼자 고고한 존재인 것처럼 지냈나 보다.


시험과 과제들로 고깃덩이처럼 등급을 매기고 줄 세우는 모습도 아니꼽고 거북했다. 혼자 n년차 인생을 사는 것처럼 매 순간을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고 살았다. 냉소주의자의 모습이 현실적인 삶이라고 생각했기에 꿈을 꾸는 것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스스로 깨우려 했다. 한참 다양한 꿈을 꾸며 열정을 태울 시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을 했다.


어느 순간에 주위를 돌아보니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있는 나를 보였다.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했다.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모든 일에 나의 주체성을 가지지 않고 되는대로 살았다. 일등도 꼴등도 자기의 가야 할 길을 알았고, 알지 못하더라도 어디로든 나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판단하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꿈도 목표도 없이 살았지만 그보다 삶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했구나.

다른 이들의 열심을 하찮게 여기며 살아왔지만 별 볼 일 없던 모습은 무기력한 나의 삶이었구나.'


인정하기 힘든 사실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고, 마주한 현실도 똑바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물론 그것도 마법처럼 한 순간에 뿅 하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손톱이 자라듯, 머리카락이 자라듯 조금씩 변해오고 어느 시점에서 알게 되는 것 같다. 아주 느려서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아 초조하지만 분명 달라지고 있다.


언제나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던 애매한 나는 이제야 조금씩 나의 길을 알아가는 것 같다. 흐릿하던 나를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칠해가는 일이다. 아직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지만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알고 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없어 보여도 작은 꿈의 씨가 이제 막 싹을 틔웠으니까. 머지않아 멋진 나무가 되어 꽃 피우고 열매를 맺어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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