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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여노 Dec 12. 2019

뜻밖의 선택, 20대 끝자락에 결혼하기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 투쟁의 결과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한동안은 투쟁이었다.

그와의 투쟁뿐 아니라 나 스스로와의 투쟁.
만남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되던 시점부터 그는 결혼을 이야기했다. 너랑 결혼하고 싶어, 나랑 결혼해줄 거지? 끊임없는 구애 속에 무려 4년을 더 버텼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남자들이 여자를 좋아하고 사랑할 때 흔히 말하는 얘기겠지라며 넘겼고 그게 1년이 지나고 2년, 3년이 되어갈 땐 ‘그래 언젠가 결혼은 하겠지. 그때 이 사람이랑 하면 나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 정도였다.


간혹 드는 의심은, 이 사람은 '나'랑 결혼을 하고 싶은 걸까? 그냥 '결혼'을 하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우스워 보일 수 있겠으나, 하도 구애하니 내 딴에는 오만 생각을 다했다.
한 번은 대놓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가 말했다.
"인생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이야. 나에게도 정말 중요한 선택이고, 나 그렇게 바보 아니야."


내 인생 계획에 결혼은 없었다. 적어도 내 나이 서른이 넘어갈 때까지는 말이다.
왜 서른을 딱 분기점처럼 정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앞자리가 바뀌기 전까지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그런 의지 표현 정도로 봐야 하려나...?

대한민국에서 나이 서른이 가지는 의미가 아직까지도 조금은 특별한 것처럼 여겨지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싶은 게 워낙 많았던 나는 (물론 지금도 엄청 많다.) 언제나 다이어리에 하고 싶은 일과 할 일 리스트를 쭉 적어 내려가는 게 취미인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결혼이란 그저 걸림돌이자 구속 정도의 의미로밖에 다가오지 않았다.

29살 인생, 착한 맏딸이자 자기 일을 척척 해내는 믿음직스러운 딸로 그 역할을 열심히 해내며 살아왔기에 결혼이라는 두 글자로 또 다른 역할을 부여받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나로, 어느 누구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커리어도 쌓고 많이 경험하는 인생을 꿈꿔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이라는 게 내가 꿈꾸는 자유를 무조건적으로 방해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하지만 일정 부분 제약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하는 의사결정이 아닌 함께 생각하고 의논해야 할 상대가 생겼으니.. 좋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자꾸 제동을 거는 거다. 본인은 남자 친구보다 남편이 좋다고 말하는데, 난 남자 친구가 더 좋았다. 본인이 좋아서 결혼해놓고 결혼은 무덤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많은 남자들 무리에 내 남자 친구가 낄 거란 생각은 안 하지만, 남편이라는 어감도 사실 싫었고 말이다.

지금도 뭐... 남편이라는 표현은 잘 모르겠다.

심지어 필자는 계산적인 부분도 없지 않은지라 결혼을 하게 되면 떠안게 될 거라 생각되는 책임에 분명히 아내에게 지워지는 부분이 크다는 것이 끔찍이도 싫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지만 평생 엄마만 봐도 알지 않는가. 둘에서 셋이 되는 순간 안게 될 책임은 아직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요즘 같은 시대에 경제적인 부분을 함께 부담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딸이자 엄마이자 며느리이자 아내라는 모든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거지? 라며 혼자 손익 계산을 해댔다. 결혼을 하면 남자 친구에게도 그에게 주어지는 역할과 책임이 존재하지만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은 건 극구 일찍 결혼하지 말라는 87세의 우리 할머니와 엄마의 말, 그리고 내가 봐온 그들의 삶의 무게가 아마 뼈에 닿았기 때문이겠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인데, 어떻게 결혼이라는 결정을 하는 게 쉬웠겠는가.
그래서 그가 이전과는 달리 결혼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도망가고 싶었다.

내 생각과 상충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엔 내 그릇이 작고 결혼을 선택하며 내 권리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기엔 두려웠기에... 그럴 때마다 한국에서의 결혼이 불합리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흉보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와 헤어지긴 싫었다. 내가 비혼 주의자였다면 또 모르겠다.
내가 요즘 푹 빠져서 봤던 드라마 '검블유'에서 나왔듯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 중 한 명은 본인의 가치관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면 두 사람을 위해 진정 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에게 결혼은 2,3년 후에 할 것인가 지금 할 것인가 하는 시기의 문제였다. 게다가 그가 놓치고 싶지 않은 좋은 사람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도망가지 못했다.  


결국 난 그와의 투쟁에서 졌다. 패배.
하지만 스스로와의 투쟁에서는... 여전히 지속 중인 듯하다.

그는 4년을 그래 왔듯 결혼을 확실히 하기까지 열심히 나를 설득시켰다. 그 설득이 대부분 본인 위주의 생각과 감성에 호소하는 부분이라 효과적이진 않았지만, 이별을 선택하기엔 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내 가치관과 나라는 사람 자체를 존중해주고, 평생을 함께 해나갈 때 내가 선택하는 것들에 있어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줄 거라는 생각이 결혼을 결심하게 했다.


불같은 성격의 나를 포용해주는 그 따뜻함이 좋았고, 허당 같은 모습만 내내 보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통찰력 있는 모습을 보여줄 때는 가장 매력적이었다. 보다 큰 이유는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이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결심했고, 우리는 현재 결혼을 준비 중인 말 그대로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결혼을 3개월 앞둔 지금, 나는 결혼은 비단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앞서 결혼을 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몸소 느끼고 있다. 더불어 위에서 언급했던 역할 부여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내가 생각으로 했던 불합리함은 역시나 현실이 되어 따라왔다.)

이건 결혼식까지 이뤄지는 수많은 의사결정을 위해 논의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복될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나는 해보고자 한다.


결국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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