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싫었다 일기를 쓰면 좀 자유로워질까?
새해다. 설 연휴가 지났는데 아직 새해라는 실감이 없어서 집에 있었다. 우울했다. (이건 우울에 압도당한 상태가 조금 지나서 느끼는건데) 슬펐고. 뭐 손가락 까딱하기 싫은 정도를 넘어서 ‘일단 안 죽고! 살려! 놓았으니까! 됐지!’ 하고 아주 솔직하게 잠만 잤다. 사람마다 성격이 좀 다르겠지만, 보통 나는 우울하고 불안할때 잘 수축한다. 수축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나의 불안이 타인에게까지 안 가고 나에게만 머물러 있으면 일단 문제가 좀 작아진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가면 그때부터는 확실히 좀 문제같은데 혼자 하면 뭐랄까...
오늘 좀 게으르면 다음날의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문제같달까...
경향...? 경향이지. 난 사실 아직도 약간 이렇게 생각하긴 하니까. 보통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나 스스로의 모습들은 압도된 상태다. 압도는 영어로 하면 Overwhelmed. 내 상황에는 이거보다 적절한 단어가 없다.
‘내가 아 나 지금 좀 문제구나?’
할때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이 상태에 돌입한 순간이다. 그냥 단순하게 나의 케파보다 뭐든 오버된 상태다. ‘아? 내가 너무 압도 혹은 몰입해서 다른게 안보이는구나?’ 상태.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불안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 나는 긍정으로 압도당했을때도 상태가 완전히 같다. 알아차렸을땐 보통 좀 늦다. 긍정일때가 좀 더 예후가 나쁜데 ‘압도’ 자체가 문제라는것도 사실 잘 몰라서 아주 상태가 늦은 다음에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몇 가지 특징이 좀 있는데
이 상태에 다다른 나는 약간 로봇처럼 말하고 (규칙)
로봇처럼 행동하고 (규칙)
그 시간 외에 계속 잔다. (비규칙)
약간 퓨즈 끄는 거 같은거다. ‘과부하’ 상태.
이때는 자의로 이 ‘압도된’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중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실 해봤자 악순환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해결 방법을 잘 모른다. 일단 그 생각을 안하려고 다른거에 죽어라 몰입해서 뭔가를 하고 몸이든 마음이든 피로한 상태를 만들어서 빨리 잔다. 지쳐서 번아웃 되면 일단 몸이 아프고 뭘 더 못하니까 약간 만족한 기분으로 (탈진하면 보통 결과든 마음이든 성취감이 좀 있다. 아주 문젠지 나도 안다) 에너지 조금 올리고. 그거 하다 지치면 다시 1번으로 돌아가서 하다 지친거 끝내고. 그거 끝내면 시간이 물리적으로 어떻게든 좀 가니까 1번의 문제가 좀 작아졌다고 생각해서 다시 좀 직면해서 약간 하고 2번으로 지치고. 그럼 3번 하고. 그러다보면 1년 후딱 간다.
단지 이게 문제라고 생각할때는 내 기능에 심각한 오류가 생겼을 때쯤들인데. 과부하가 오래되면 CPU가 좀 앵꼬나듯이 좀 그럴때. 기계 고장나는거랑 완전히 동일하다. 나에게는 지금 이 압도된 감정이 긍정인가 부정인가는 별로 안 중요하다. ‘통제 외에 상황이 생겼을때 내가 어느정도 반응할 수 있는가’가 나에게는 건강과 불건강의 척도인데. 유연하지 않음을 넘어서 아예 잠들면 이제 그때는 확실히 오작동 중인 상태다. 못 깨니까.
나는 감정에 극도로 취약하다.
제일 좋은 예시를 들면 영화 <사도>라고 생각한다. 거기 이제 ‘사도’가 하는 행동들이 사람들은 우울증 혹은 기분 장애가 문제가 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데(나 스스로도 사실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고 저 정도는 확실히 좀 ‘이상하다’ or '미쳤다' 싶긴 하니까) 사실 이제 나는 영조 과의 우울... 그러다가 ‘사도’의 상태가 될까봐 걱정하는 스스로에게 가장 지치는... 타입이다!
1) 재밌다 (OR) 슬프다. 2) 힘들다. 3) 지친다. 4) 몸이 아프네? 5) 졸려.
이 다섯 개가 내가 아는 나의 감정 시스템의 전부에 가깝다. 심지어 이게 좀 늘어난거임. 내가 아주 건강할때 5번 졸리다가 ‘무서워(=그래서 약간 시간을 두고 조건부 이탈할건데 혹은 약간 버틸 힘이 생기면 버틸건데, 당장 안 이탈하니까 이건 나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정도로 바뀌는 정도...? 근데 이제 오작동 상태가 시작되면 4번 몸이 아프네 상태에서 설명없이 죽어있는 기간이 길다.
뭐 하느냐? 잔다.
진짜 에너지 돌아올 때까지 겨울잠 자는 곰처럼 20시간 이상 잔다. 배고픈지, 추운지, 슬픈지, 지친건지, 아픈건지, 화가 난건지 분간이 사실 안되니까 생각해봐야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진짜 솔직하게 핸드폰 끄고 방문 잠그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 기분 돌아올 때까지 혼자 잔다. 물리적인 방법을 총 동원한다. 수면제, 안정제, 목욕, 운동 등등 이때 나의 가치 판단 기준은 딱 하나다. ‘지금부터 감정기복을 키울만한 행동은 전부 하지 말자’ 그래서 좋은 점은 이 상태의 나는 약간 스님 같다. 통제감을 되찾는 행동 중에 내가 제어할 수 없는 행동은 아예 안하니까. 음식도 거의 안 먹는다. 배 고픈지 잘 모르겠고 대부분의 욕구가 약간 꺼진다. 그 욕구가 두려운 상태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 나의 욕군데... 거슬리고 싫고 무섭다.
(예를 들면, 난 술과 사람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때는 술은 커녕 아예 나중에 흑역사가 될까봐 제일 먼저 SNS를 전부 지운다. 핸드폰은 상자에 넣어놓는다. 사실 내가 우울할때 연락이 종종 안되는 이유는 이거다. 나는 나의 아웃풋 중에 정제되지 않은 걸 내보내는게 싫다. 인풋도 자극이 될만한게 싫고. 그래서 압도 상태일때는 깔끔하게 안 나가고 창작물 안 쓰고 안 본다. 드라마, 영화, 심지어 애니메이션. 재밌는 다큐 조차도 하면 빠지면 에너지 올라오니까 저 시점에는 안 본다. 사람? 되도록이면 마주치지 않는다. 특히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과는 더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나도 이유는 잘 모른다. 옷도 정해진 것들만 입는다. 깬 시간에는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정해진 수행과제들이 좀 있다. 호흡 명상 같은거 그거 하고 책보고 다이어트 같은거 혼자 하는 것 중에 정해진 것들만 한다. 아무래도 몸이 무거우면 자존이 쳐지니까.
약간 상태가 좋아지면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하는데 자극 민감도를 처음부터 올릴 수 없으니 내가 안전하다고 확인된 범위에서만 움직이고 모르는 사람들이랑은 익명의 공간에서 딱 정해진 시간만 앉아있다가 돌아온다. 심지어 동물도 안 키운다. 동물은 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아프고 죽으니까. 무생물과 식물 정도와 일방적인 소통한다. Ex, 청소... 분갈이... 식물 닦아주기... 방 닦기... 화장실 타일 청소... 머리카락 줍기. 이렇게 눈에 보이게 행동 범위를 줄여서 약간 통제감을 찾으면 그 다음 행동을 한다. 단지 시간이 제법 걸리기도 하고 난 불건강할때 “내가 지금 불건강해서! 잠깐 아웃될게” 하는 편인데 이미 하겠다고 했거나 일로 정해진 일들은 한다. 심지어 나는 내가 융통성 없음이 싫어서 가서 약간 해이한 척(불성실한 척이 아니라 내가 융통성이 되는척, 아직 안 꺼진척)을 하니까 내가 인간적인 케파가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안 믿기도 좀 하고)
몰입-피로-번아웃-소진-이탈
(혹은 다음 몰입).
이 오랜 구조는 아주 오래 나를 우울한 상태에서도 기능하는 인간으로 버티게 해주었다. 그래서 30대 되기 전까지는 문제라고 생각 못했고, 이제야 약간 ‘아? 문제네?’ 하는 상태지만 방법을 썩 모르는 상태의 2년을 보냈다.
내가 ‘소진’ 상태일때 이탈 말고 다른걸 해본적이 있는지. 아니면 이탈 말고 다른 방법이 좀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 아니면 나의 몰입 자체가 문젠지 뭐 이런거. 찾으면서. 2년동안 내가 주도적으로 한 일은 몰입을 아주 세세한 단위로 쪼개는 것 뿐이었다. 매커니즘으로 움직이는 일들과 사랑을 담아서 움직이는 일들을 분간하고. 매커니즘의 일에는 규칙과 단계를 만들고, 사랑으로 움직이는 일들에는 단계를 싸그리 지웠다. (어차피 통제가 안되니까) 대신 이제 자극의 수용 정도를 정해놓는거다. 지금의 내 상태로는 시간과 빈도는 이정도만 가능하다. 이런거.
예를 들면, ‘창작’ 같은 것.
이건 너무 사랑하지만 내가 안할 수는 없고, 하면 확실히 몰입상태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는 것들인데. 안하는 상태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 다른 것들로 버티는 다리들을 먼저 만들고 좀 버텨지면 창작을 하게 나에게 허용한다. 예를 들면 박사는 내가 좋아하는 나의 다리. 논문 아주 성공적인 다리다. 결과도 남고 머리도 피곤해지고, 심지어 건전하고 유용해. 운동, 뭐 나쁘지 않은 다리다. 외주 업무? 사실 살려면 필요한 다리들이다. 오히려 좋다(열심히 하다보면 시간도 잘가고 자존도 돌아오니까). 단지 이거 다 하고 좀 지치면 몰입을 억지로 못할테니까 취미처럼 주 1회 창작을 나에게 허용해준다! (대신 돈 받는 정도의 완성도는 안됨: 나와 타인을 실망시킬거임. 이게 이제 제일 틀린 생각인지는 알겠는데 잘 안 고쳐짐) 이런 식인거지.
아무래도 장단점이 있다.
인과도 좀 있고, 오늘은 처음으로 우울할때 수축하는것이 확실히 별로라는 생각을 좀 했다.
아무래도 오늘의 브런치는 써놓고 후회할 수도 좀 있고, 앞뒤 말이 좀 안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많이 우울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정도까지 가면 난 혼자 힘으로 잘못 나오기 때문에 외부 활동(일 외의 유희 혹은 네트워킹 활동)을 일절 안하고 나의 규칙 안에서만 사는데 이 상태의 나와 평소의 나는 격차가 좀 심하다.
작년 재작년에는 아주 천천히 회복세로 돌아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1. 일단 대중교통을 탈 수 있는 시간이 좀 늘었고,
2. 내가 의도하지 않은 놀람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늘었고
3. 나의 기능들에 조금 문제가 덜해졌고 (읽고 쓰고 생각하고, 계획짜고, 운동하고, 먹고, 대화하고)
무엇보다 조금 즐거웠다.
감정을 느낄 새가 없다는 말은 돌려말하면 내가 보통 느끼는 감정들이 나에게는 버겁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은 인간관계, 휴식, 대화 이런 것들이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 같고,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왜 나는?
아직 이 질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는 보통 그 때 가장 취약하기 때문이다. 휴식...? 잘 모르겠다... 나는 안 즐겁다... 쉬는거... 운동...? 피로할때 사점 넘기면 좀 도파민이 도는 것 말고 재밌어서 하지 않는데... 대화...? 유익하지... 근데 취약하지 않을때 하고 싶다.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자신이 있을때.
심지어 자는 것...?
내가 처음 얘기하는거 같은데 나 자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꿈을 안꾸고, 눕자마자, 고민없이 자고 깰 수 있으면 좋을거 같긴 하다. 근데 난 저 셋이 의지로는 잘 안되는 사람이라... 난 보통 취약하면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린 꿈만 꾼다. 작품쓰다가 잠깐 잠들면 작품의 뒷 얘기. 현생 살다가 잠들면 꿈에서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대화를 딱 이상하다고 느낀 지점에서 ‘아, 다행이다! 꿈이네’하고 다시 꿈- 이걸 깰때까지 반복하는 상태다. 과부하일때는 보통 아침되면 지쳐있다. 깰려고 노력한 시점이 현실의 진짜 아침인지 꿈의 ‘-1 ’-2 상태인지 완전히 깬 다음에나 알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규칙 외에 다른 행동을 많이 하지 않는 것...?
맨날 ‘잔다’하고 사라지니까 내가 나 스스로도 이건 불면증이 아니라 풀면증이 아닌가...? 하지만... 우울할때 몸을 움직이면 문제가 커진다는 내 오랜 착각이 날 계속 눕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안 눕고 안 자고 타인들과 있으면 자꾸 문제가 더 커질것만 같다. 사실 나의 힘으로는 타인이 아니라 나의 불안 하나도 해결할 수 없는데.
하얀 코끼리 같은거다.
‘하얀 코끼리’ 생각하지 마세욥. 하면 다들 하얀 코끼리만 생각하게 된다는 건 어떻게들 다 알아. 근데 이제 그럼 어떻게 해야 그 생각 안하는지. 다른 생각 중에 건강한 생각은 뭔지. 이미 대화 주제에 하얀 코끼리가 튀어나온 시점부터는 난 싹 모르겠는데 다들 어떻게든 하고 사니까 나도 하고 사는 것처럼 꾸며보고 싶다. 그치만 난 잘 안 돼. 그래서 잘 안되는 나를 아니까 하얀 코끼리 근처에는 아예 안 가는 사람인거지. 근데 하얀 코끼리가 아예 없는 삶이라는건... 사실 모른다.
이러다보니 좋은 모습이 더 줄어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사도>에 보여지는 ‘사도’는 내가 보기에는 정신병보다는 그냥 초민감형. 근데 좀 이제 자기 수용이나 타인 수용이 전혀 안 되는 모습의 상태 같고, 영조는 자기 수용은 안되면서 타인 수용을 받아본 경험이 좀 있고 그게 나쁘게 발현된 상태(아무래도 왕이니까 사람들이 오냐오냐 해준 것 같다)로 보이는데 나의 모습들이...
영조 같았다. (아잇 젠장)
혐오는 종종 나에게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 이런 것들은 나도 싫고 다른 사람에게도 하기 싫다는 행동들. 그런데 사실 나의 불건강함은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그거 안 하려다 보니 벌어지는 나의 통제감 상실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달에는 스스로가 진짜 싫었다.
나르시스트 같았다.
유튜브에는 다들 나르시스트를 피하는 법만 알려줬는데, 내가 나에게 가장 가혹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의 통제불안이 다른 사람에게 위험할거 같으면 나를 어떻게 잘 격리해야 좋은지를 안 알려줘...
오늘의 시도는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꺼내놓기다.
다른 사람들이 어느 정도 공감을 할지는 사실 잘 모르겠는데, 좋은 면만 보여주려고 열심히 ‘억압’하는 나의 분노와 자기 혐오가 버거웠다. 아 참 싫었다!
심지어 쓰는 이 순간에도 ‘싫다’는 못 쓰고 싫‘었’다 쓰는 내가 싫다!
내가 나에게 그럭저럭 잘 대해주는 것은 왜 이다지도 어려울까. 아, 치과 가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