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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코 Feb 01. 2020

16. 뒤처지지 않으려

과테말라/안티구아

드디어 화산을 보러 가는 날이다. 8시 30분에 온다던 셔틀은 만석인 채 9시 5분이 돼서야 도착을 했다. 셔틀엔 한국인 두 분 및 이스라엘, 캐나다, 폴란드 등 다국적 여행자들이 타고 있었다. 우린 가는 길에 투어사에서 외투와 모자 장갑 및 런치박스를 받았다. 도대체 얼마나 춥길래 겉옷까지 빌려주는 걸까. 외투는 조금 낡았지만 추위를 피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몇십 분 더 달려 우린 등산로 앞에 내렸고 그렇게 트레킹을 시작했다.


나름 여기저기 여행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많은 트래킹을 해봤지만 아카테낭고, 정말 힘들었다. 역시 화산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가 보다. 계속 끊임없는 돌 섞인 흙으로 된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강아지 몇 마리가 우리를 따라왔는데 오죽하면 강아지들도 중간중간 쉴 때마다 누워서 휴식을 취할 정도였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욕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중간에 점심을 먹고 또 계속 걸었다.


기존에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사실 트레킹이 몇 시쯤 끝나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계를 보면 오히려 더 시간이 안 갈 것 같았다. 일부러 시간을 무시한 채 앞만 보며 그렇게 쭉 끊임없는 고행길을 지속했던 것 같다. 스스로 체력이 뒤쳐진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우리 그룹에서 내가 계속 뒤처져서 가이드가 결국 내 배낭을 들어주었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흐름에 따라가려고 노력했으나 야속한 내 다리와 폐는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마치 인생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정한 흐름, 몇 살엔 대학에 가고 몇 살엔 취업을 하고 등이 있다. 나도 따라가고 싶었다. 남들과 같은 시간을 걷고 싶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돌아가고 뒤쳐지게 되었다. 그러나 좀 뒤처지면 어떤가, 누군가 내 짐을 대신 들어주면 또 어떤가. 결국 같은 정상에 도착하는 것 아니겠는가.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가 그렇게도 중요할까. 어쨌든 지옥 같은 화산길도 결국은 끝이 나고 우린 낙오자 없이 모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그래 아무리 힘든 시간도 언젠간 끝이 나는 법이리라.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바로 옆으로 화산이 보였다. 또 종종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화산에 왔구나라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모닥불 앞에 앉아 가이드가 준비해 준 저녁 및 차, 커피 등을 마시며 하이라이트인 밤의 화산을
보기 위해 대기를 했다. 모닥불에 마시멜로우도 구워 먹었다. 즐거웠다. 많은 외국인 사이, 바로 옆엔 화산이 있고 참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지금은 당연한 지금이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분위기도 참 그리워지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 만났던 한 한국인 여행자가 내게 꼭 필요할 거라며 물안경과 헤드랜턴을 주었는데 모닥불의 가루가 계속 튀어서 다들 눈이 매운지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러라고 준거구나! 난 물안경을 꺼냈고 순식간에 인싸가 되었다. 물안경을 쓰니 확실히 잿가루가 차단되었고 외국인들이 물안경을 한 번씩 돌려쓰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렇게 우스운 상황, 그 외에도 영어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고 우린 화산을 기다렸다. 그러나 날씨운이 따라주지 않았는지 저녁쯤부터 흐려진 하늘은 자욱이 안개가 끼어있었고 도저히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안갯속 펑펑거리는 소리가 우릴 희망 고문시킬 뿐이었다.

결국 몇몇은 포기하고 들어가서 잠을 청고 나도 들어가 침낭을 펼치려는 찰나 누군가 "하늘이 많이 맑아졌어요."라는 말을 내게 건네 왔다.


흥분이 된 나는 양말 바람으로 밖으로 나왔고 정말 맑은 하늘과 선명한 화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개가 사라지니 하늘에 별도 엄청 많이 보이고 마을의 야경이 보였다. 정말 아름다웠다. 또한 기다리니 드디어 화산이 터지기 시작했다.


화산은 정말 경이로웠다. 내가 한평생 태어나 내 눈으로 실제로 터지는 화산을 볼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태어나서 살아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오래간만에 들 정도로 자연은 나를 감동시켰고 정말 아름다웠다. 화산이 터질 때마다 "우워어~"라는 감탄사를 반복했다.


그러는 한편, 한 편으로는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당신의 젊음을 희생해 그는 새로운 젊음 하나를 피웠고 그 젊음은 지구 반대편에 가서 세상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그런 청춘의 꽃으로 자라났다. 꽃을 피움과 함께 아버지는 한 줌의 재로 사라졌기에 당신의 청춘을 희생해 새로이 태어난 청춘이 지금 이렇게 화산 앞에 서있다는 사실 뭔가 씁쓸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펑펑 터지는 멋진 경관을 충분히 감상한 후 잠에 청하기로 했다. 외투를 빌려준 이유를 알겠다. 모닥불을 벗어나니 산은 엄청나게 추웠다. 가디건 두 겹, 남방 한 겹, 빌려준 외투에 장갑, 모자, 침낭 두 개를 걸치고 나서야 나는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화산을 보다니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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